Sociological Analysis of Hyanggyo and Anti-Japanese Confucianism at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이 연구는 유림 사회가 전시체제 일제의 유림 장악 정책에 따라 친일 협력 세력으로 전락했다는 기존 유교사 연구 관점과 달리 지방의 전통유림이 배일 성향을 유지했다는 것을 향교 석전 관련 자료와 일기·소설 같은 비공식적 자료를 분석해서 입증하려 했다. 이를 위해서 이 연구는 향교를 일제의 행정 권력이 작동하는 친일 협력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이에 맞서 유교 전통을 수호하려는 전통 유림의 대항 공간이라는 복합적 인식의 관점에서 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연구는 일제의 유림장악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던 요인을 중국 유교와 구별되는 조선 유교의 종교적 특수성과 학맥을 중심으로 하는 인적 네트워크 방식에서 찾아 제시했다. 첫째, 조선 유교는 직업적 성직자나 교단 조직을 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국가종교로서 일상 의례와 규범으로 용해되어 세속 사회를 규율했다. 향교는 지방 유림의 자치 공간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실천의 장소였다. 향교가 지방 권력과 친일 유지에 의해 장악된 상황에서 전통 유림은 문묘 석전 보존에 주력했는데, 일제에 의해 그 종교성이 훼손되자 향교 출입을 삼갔고 그 덕분에 일제에 협력하지 않을 수 있었다. 둘째, 조선 유림 사회가 학맥 중심의 인적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던 까닭에 일제가 권력을 통해 장악할 조직이 부재했다. 이에 일제는 전시체제기에 총독과 도지사 등이 직접 관제 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와 지방 지회를 조직해서 유림 사회를 지배하려 했지만, 일제에 포획된 친일 유지세력만 동원되었을 뿐이었다. 어두운 시기를 견뎌낸 배일 유림의 고난과 운명에 관한 이 연구 결과를 통해서 근현대 유교사를 더 정확하게 서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Authors
- Hwang-Jik Y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Korean Journal of Social Theory
- Published
- 2025-05-31
- DOI
- https://doi.org/10.37245/kjst.2025.05.67.237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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