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Documentary Heritage an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Namwon - Focusing on the Martyrdom Records and Namwon Jongriwonsa Temple -

본 논문은 2023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 가운 데 남원지역과 관련된 『순교약력』과 『남원종리원사』이 생산된 배경과 그 내용을 살펴본 뒤, 두 기록물 내용을 중심으로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순교약력』은 남원 동학인 총 91명에 대한 성명 및 약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기록물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1894년에 사망한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동학농민혁명기에 사망한 42명 가운데 둔덕면과 산동면 출신 이 각각 7명과 11명으로, 이 두 지역이 남원지역의 동학 확산과 동학농민혁명 참여 의 중심지였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연령층은 30-40대가 가장 많으며, 사망 시기는 거의 모두 정부군과 일본군이 남원을 떠난 12월 5일 이후에 체포되어 처형되 었다. 이는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문제의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남원종리원사』부록으로 있는 「남원군 동학사」는 1924년 10월 22일 동학농민 혁명기 동학 지도자였던 원로 유태홍의 구술을 남원군 주임 종리사 최병현이 기술한 것으로, 1861년에 수운 최제우가 남원에 온 사실부터 1904년 일진회사건까지 44년 의 남원지역 동학 역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전체 분량의 60% 정도가 갑오년 남원지 역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을 중심으로 남원 천도교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그를 위해 「남원군 동학사」는 1861년에 수운 최제우가 남원에 두 차례 방문한 점, 1892년 삼례 동학집회, 1893년 1월 광화문 복합상소, 1893년 3월 금구 원평 및 보은집회에 적극 참여한 사실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전주화약 이후 집강소가 설치되면서 남원에 김개남이 5영을 설치한 사실, 11월 14일 방아치전투, 11월 28일 남원성 퇴각 등에 관한 새로운 사실 등을 담고 있다. 다만, 「남원군 동학사」는 남원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일부 사실은 소략하게 기술되어 있고 착종되거나 내용상의 오류가 일부 있어 사료 내적 비판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원군 동학사」는 동학농민군 입장에서 기록되어 있어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남원 출신 동학농민군들이 어떻게 죽어갔고, 설령 생존하였어도 얼마나 힘든 삶을 이어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Donghak nongmin hyeongmyeong yeongu (Online)
Published
2025-05-31
DOI
https://doi.org/10.69636/jdpr.2025.4.1
Primary Topic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Contr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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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Documentary Heritage an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Namwon - Focusing on the Martyrdom Records and Namwon Jongriwonsa Temple -

Yang-Sik Kim
Donghak nongmin hyeongmyeong yeongu (Online)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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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Documentary Heritage and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 Namwon - Focusing on the Martyrdom Records and Namwon Jongriwonsa Temple -

Yang-Si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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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2023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 가운 데 남원지역과 관련된 『순교약력』과 『남원종리원사』이 생산된 배경과 그 내용을 살펴본 뒤, 두 기록물 내용을 중심으로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순교약력』은 남원 동학인 총 91명에 대한 성명 및 약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기록물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은 1894년에 사망한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동학농민혁명기에 사망한 42명 가운데 둔덕면과 산동면 출신 이 각각 7명과 11명으로, 이 두 지역이 남원지역의 동학 확산과 동학농민혁명 참여 의 중심지였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연령층은 30-40대가 가장 많으며, 사망 시기는 거의 모두 정부군과 일본군이 남원을 떠난 12월 5일 이후에 체포되어 처형되 었다. 이는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문제의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남원종리원사』부록으로 있는 「남원군 동학사」는 1924년 10월 22일 동학농민 혁명기 동학 지도자였던 원로 유태홍의 구술을 남원군 주임 종리사 최병현이 기술한 것으로, 1861년에 수운 최제우가 남원에 온 사실부터 1904년 일진회사건까지 44년 의 남원지역 동학 역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전체 분량의 60% 정도가 갑오년 남원지 역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을 중심으로 남원 천도교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그를 위해 「남원군 동학사」는 1861년에 수운 최제우가 남원에 두 차례 방문한 점, 1892년 삼례 동학집회, 1893년 1월 광화문 복합상소, 1893년 3월 금구 원평 및 보은집회에 적극 참여한 사실 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전주화약 이후 집강소가 설치되면서 남원에 김개남이 5영을 설치한 사실, 11월 14일 방아치전투, 11월 28일 남원성 퇴각 등에 관한 새로운 사실 등을 담고 있다. 다만, 「남원군 동학사」는 남원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일부 사실은 소략하게 기술되어 있고 착종되거나 내용상의 오류가 일부 있어 사료 내적 비판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원군 동학사」는 동학농민군 입장에서 기록되어 있어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남원 출신 동학농민군들이 어떻게 죽어갔고, 설령 생존하였어도 얼마나 힘든 삶을 이어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Donghak nongmin hyeongmyeong yeongu (Online)Vol.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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