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Su-hang(金壽恒)'s 1664 Tour of Mount Chilbo(七寶山) and the “Bukgwan Suchangrok(北關詶唱錄)”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다양한 결집 활동을 통해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문화적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들은 같은 운자(韻字)를 사용한 시를 주고받는 시문(詩文) 수창(酬唱)을 통해 교류하며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현재 발견되는 다수의 계회(契會) 및 시문 수창의 흔적들은 사대부들의 이러한 의식을 반영한다.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문인교류의 현장성에 주목하여 이를 문예물로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살펴보기 위한 한 사례로 『북관수창록(北關詶唱錄)』에 주목하였다.』북관수창록』은 1664년 김수항의 함경도 칠보산(七寶山) 유람을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김수항은 당해 8월 함경도 길주(吉州)에서 시행된 문무 과시의 시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공무의 여가에 홍석귀(洪錫龜), 민정중(閔鼎重), 조성보(趙聖輔) 등과 성진(城津)에서 회합을 가졌다. 또한 과시가 끝난 후, 인근의 명천 칠보산을 유람하며 이에 대한 감흥을 한시로 남겼다. 김수항의 동행자들은 김수항의 시에 수창하는 것으로 명승에 대한 동시대적 공감대를 조성하였다. 이를 화원 한시각(韓時覺)이 다시 그림으로 포착하면서, 이들의 회합과 칠보산 유람은 총체적인 문예물로 구현되었다. 본고에서는 그림-시문의 구조 및 당시 수창 참여자들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중심으로 『북관수창록』을 읽어보고자 하였다. 『북관수창록』의 그림과 시는 상당히 긴밀한 연계를 취하고 있었다. 그림은 수록된 시문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내러티브적 수법을 통해 여정을 효과적으로 포착했다. 한편, 정쟁에서 밀려난 서인 세력은 함경도라는 변방에서 느끼는 좌절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기대감을 결집과 유람이라는 행위를 통해 『북관수창록』에서 표출했다. 또한 가문의 범위로 좁혀볼 떄 선대의 정치 고난을 재현하고 현양하기 위한 의식도 드러난다. 이러한 지점에서 『북관수창록』은 종합문예물로서 그 가치를 획득한다.
Authors
- Jaeyoung Choi (ORCID: https://orcid.org/0000-0001-9118-8050)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Published
- 2024-10-31
- DOI
- https://doi.org/10.16900/onji.2024.81.01.009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