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Social Significance of Gwangju Shrine and Park in the 1910s~1920s
조선총독부는 1917년 5월 1일 광주신사의 정식창립을 허가하였다. 광주신사가 설치된 광주공원은 본래 성거산 혹은 구강으로 불리며 지역 조선인의 삶과 긴밀히 연결된 장소였다. 광주공원과 그 내부의 광주신사 및 충혼비는 광주지역민의 일상적 공간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방법이 되었다.BR/ 1927년 7월 말 광주신사 신직이 조선인을 구타한 사건은 전국적으로 조선인의 분노를 자극할 요소를 담고 있었다. 그 요소란,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제국일본의 상징적 공간인 신사였다는 점과 사건의 가해자가 신사의 운영과 관리를 담당하는 공적 신분을 가진 신직(神職)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광주청년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전국적으로 성토하려 했지만, 광주경찰서는 이를 금지하였다.BR/ 이 사건은 신사가 참배의 강제와 같은 방법만이 아닌, 직·간접적인 폭력을 통해서도 누가 지배자고 누가 피지배자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제국주의적 훈육의 공간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광주신사가 기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찰이라는 폭력의 정당성을 가진 기관의 협조와 방관이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Authors
- HyeonSeok Ha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apanese Cultural Studies
- Published
- 2025-04-22
- DOI
- https://doi.org/10.18075/jcs..94.202504.171
- Primary Topic
- Landscape and Cultur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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