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onage hierarchies and characteristics of 16th-century bell-making
본 논문에서는 한국범종사 연구에서 조선 전기의 제작 사례로 중요하나, 그간 논의되지 않았던 16세기 범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16세기 범종에 기재된 주종 기록을 비롯해 봉안 사찰과 관련된 문헌 사료는 제작 배경과 후원 계층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이다. 16세기 범종은 조선 전기인 15세기부터 원당, 원찰 등과 같이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또는 국가의 면세와 잡역 면제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재원 마련이 가능했던 사찰들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제작 방법은 간선, 대화사, 대화주 등의 소임을 맡은 승려들이 권선문을 작성하고 다수의 시주 인원을 모집하여 재원을 마련하는 모연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범종 불사의 주된 후원 계층은 승려와 일반 백성이며, 현금을 직접 시주하거나 철물, 포, 황밀 등 범종 제작에 필요한 현물을 시주하였다. 이러한 범종 불사의 후원 시스템은 1619년 <가평 현등사 범종>의 사례처럼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에도 이행되었고 조선 후기 범종 불사 진행에 근간이 되었다. 16세기 범종의 양식은 기본적으로 단용의 종뉴, 입상연판문대와 연판문, 사각 형의 연곽, 보살상, 범자, 당좌 등을 표현하였다. 일부 범종에서는 쌍용의 종뉴, 운룡문, 수파문 등 15세기 왕실 후원 범종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외래 요소가 부분적으로 반영되기도 하였으나, 범종의 외형과 세부 장엄 문양은 고려시대 범종의전통 요소를 꾸준히 계승하였다. <안양 삼막사 범종>(1625), <남원 대복사 범종>(1635), <문경 김룡사 범종>(1670), <홍천 수타사 범종>(1670) 등 17세기에 제작된 일련의 작품들은 16세기 범종의 양식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주종 기록에 양각과 점각을 이용하여 기재한 수많은 승속의 시주 인원들과 현물 시주 물품 등은 16세기 이후 17세기 범종의 제작에도 모연 방식이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명확히 증명해준다.
Authors
- Suhyun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Buddhist Art
- Published
- 2025-03-30
- DOI
- https://doi.org/10.36620/bms.2025.39.6
- Primary Topic
- Historical and Architectur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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