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ievements and Problems in the Study of the Center and realm of Ancient Joseon
이 글은 고려 시대 이래로 전개된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에 대한 인식 및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추후 과제를 살펴본 것이다. 고조선 중심지에 대한 설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고조선의 중심이 시종일관 평양 일대에 있었다는 평양 중심설, 둘째는 요서‧요동 일대에서 평양 일대로 옮겨왔다는 이동설, 셋째는 준왕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중심은 중국 동북 일대에 있었다는 설, 넷째는 낙랑군 조선현은 평양에 있었지만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요동에 있었다는 설(‘왕검성≠조선현’ 설)이다.BR/ 고려 · 조선 시대에는 평양을 고조선의 중심으로 보는 설이 다수였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에 이르러 점차 고조선의 강역을 요동으로 확대해 보기 시작하였으며, 18세기 이후에는 고조선 초기 강역을 요동에서 구하는 입장도 나왔다. 19세기에 김정호는 평양이 고조선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보았다. 일제 시대에는 식민 사관 극복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이병도에 의해 실증적 방법에 의한 식민 사관 극복이 추진되었다. 최근에는 고고학적 연구로 인해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 유력한 설로 떠올랐다. 이밖에도 고조선 강역과 관련하여 패수, 요동, 만번한의 위치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조선이라는 정치체가 여럿 존재했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BR/ 이러한 고조선 중심지와 강역 연구에 있어서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먼저 최후의 수도가 첫 수도로 인식되어 전승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고조선의 정치 발전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고구려 등 고조선의 영향권에 포함된 세력들을 고려하여 그 강역을 살피는 문제도 숙고가 필요하다. 고조선의 실제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 전체를 천착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Authors
- Nam-jung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Dangun Studies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18706/jgds.2024.8.55.171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