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s of Baekje’s territory from the late Hanseong period to the early Ungjin period -Focusing on the central region-
본 논문은 5세기 중후반 백제의 동남부 · 동부 · 동북부 영역 판도와 변화상을 검토한 글이다. 5~6세기 중반 백제의 영역은 신라의 소백산맥 이서지역 진출과 고구려의 ⻄南進이라는 국제정세 속에서 퇴축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5세기 중후반 신라는 삼년산성 축조를 시작으로 소백산맥 이서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영역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기존에 백제의 권역이었던 보은 · 문의 · 옥천 · 무주 일대가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당시 형성된 백제의 동부‧동남부 영역 판도는 『삼국사기』 지리지의 내용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고고학적 출토 자료로 볼 때 문의‧무주 일대는 신라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때 백제는 청주 · 세종 · 대전 · 금산 · 무주 서쪽 일대를, 신라는 보은 · 옥천 · 영동 · 양산 · 무풍 · 무주 일대를 각각 확보하면서 대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양국의 경계 및 영역 판도는 6세기 중반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된 것으로 여겨진다.BR/ 한편 고구려는 475년 한성 함락을 전후한 시점에 충주를 기점으로 서남진하여 백제의 동북부 영역으로 침투하였다. 모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484년 시점까지 백제는 진천 일대를 확보하고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이림 · 대산성 전투기사와 세종 남성골 고구려 유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5세기 후반 고구려가 음성‧증평 일대로 진출하여 이림(증평 도안)을 장악한 후 미호천 유역을 따라 금강과의 합류 지점까지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백제가 청주 일대를 회복하면서 도안-증평 이남 지역을 경계로 고구려와 대치하게 되었고, 그 동쪽 방면에서는 신라가 보은 청천-괴산 방면에서 고구려와 대치했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 당시 삼국의 영역 판도가 『삼국사기』 지리지에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Authors
- Jong-uk Par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Dangun Studies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18706/jgds.2024.8.55.235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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