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nsformation of Weights and Measures, and the Contest between Nation-State and Empire Building in the Korean Empire
도량형의 통일은 서로 경합하는 제국과 국민국가의 입장에서 독자의 배타적인 정치·경제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이 글의 목적은 대한제국기 도량형제의 도입과정을 국민국가와 제국 논리의 경합을 통해 바라보고, 이를 통해 대한제국기 근대도량형제의 도입 및 변천과정의 역동성을 드러내는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갖는 이 글은 대한제국기 근대적 도량형 개혁이 가시화된 1902년부터 일본 척관법으로의 흡수가 완성된 1909년에 이르는 시기를 분석한다. 약 7년에 이르는 이 시기는 다시 세 구간으로 나뉘어 분석된다. 첫 구간은 도량형 제조를 위한 평식원이 설치되고 도량형 규칙이 반포된 1902년부터 평식원이 폐지되는 1904년 1월까지의 시기로, 평식원의 성격에 논의의 초점이 두어진다. 두 번째 구간은 평식원 폐지부터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 이전까지의 시기로, 1905년 3월 도량형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제국의 논리와 국민국가의 논리가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세 번째 구간은 을사조약부터 1909년 도량형법 개정에 이르는 시기로 제국의 논리가 전면화되는 과정을 도량형 조직의 변화를 통해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일본주도의 도량형 통일이 식민화에 대해 갖는 함의를 간략히 논의한다.
Authors
- Ou-Byung Cha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kookmin Social Science Review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54711/kssr.37.2.02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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