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plementation and Origins of Wegwan Munmugyocha(外官 文武交差) in Local Government during the Reign of King Myeongjong(明宗) of Goryeo
무신정변 직후에 시행된 외관 문무교차는 얼핏 보기에 지방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그릇된 제도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 무신집정자들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확대만큼이나 지방사회의 안정화도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그러한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때 시행된 외관 문무교차가 지방제도의 운영 차원에서 나름의 효과적인 면도 있었다. 무신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무신집정은 1173년(명종 3)에 경・목・도호부를 비롯해 일반 군현과 관・역에 이르기까지 무인을 병용하는 외관 문무교차를 단행하였다. 이는 어느 한 지역에 대하여 문반과 무반이 고르게 임명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군현 단위뿐 아니라 서경의 분사기구, 양계 주진의 분도원 등 폭넓게 적용되었다. 하지만 늦어도 고종대 이후부터는 문무반의 균등한 임명 원칙이 깨지고 현실적인 여건에 맞게 조정되었다. 명종대 초기에 문반과 무반이 고르게 임명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 외관 문무교차는 김보당의 난이 발생하면서 기원하였다. 김보당의 난은 기본적으로 문반관료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反무신란의 성격을 지닌다. 동북면에서 시작된 난으로 인해 전국 각지의 외관은 난에 동조하거나 호응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문반 출신이었기에 무신집정자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에 김보당을 붙잡아 처형한 후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남방의 수령들을 상당수 축출하고, 의종을 시해하고, 외관 문무교차를 전격 단행하였다. 이의방 자신은 知兵部事를 겸하여 외직으로 보낼 무반을 선별하면서 잠재적 위협이 될만한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따라서 외관 문무교차는 문반과 무반을 균등하게 파견함으로써 외지에서 문・무반의 상호 견제를 통해 혹시 있을 거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Authors
- Dong-Nyeung Cho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EONBUK SAHAK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Published
- 2025-03-30
- DOI
- https://doi.org/10.28975/jha.2025.03.73.283
- Primary Topic
-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