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eation and Migration of the Naksujeong Bell and Enseiji Bell
이 논문은 낙수정 종이 후백제 시기에 조성되었다는 기존 논문에서 제시한 논거를 보완하고, 간략하게 다뤘던 낙수정 종과 엔세이지 두 종의 제작이 갖는 함의가 무엇이고, 원위치와 그곳의 성격을 추가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또한, 이 두 종이 언제, 그리고 어떤 이유로 원위치를 떠나게 되었는지 추적하였다. 그 결과, 10세기 초 후백제 왕도인 전주에서 신라 왕실 발원 종의 전통을 잇는 낙수정 종과 엔세이지 종은, 견훤의 정체성이 ‘통일의 완성자’이면서 ‘신라의 대체자’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이 두 종은 모두 원위치인 전주를 떠나는 비운을 맞았다. 두 종 중 먼저 전주에서 반출된 것은 엔세이지 종이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전주회의에 참석했던 모리 다카마사가 이 종을 약탈하였다. 이후, 모리 다카마사는 1600년 내전 당시 후쿠오카의 다이묘 쿠로타 요시타가에게 종을 빼앗겼다. 최종적으로 쿠로타家의 가신 쿠리야마 토시야스가 창건한 엔세이지에 봉안되었다. 낙수정 종은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전주에 머물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전주의 토호이자 친일인사였던 박영근이 사이토 총독에게 이 종을 바쳤고, 사이토는 다시 후쿠오카의 스이조우인에 기증하였다. 이로써, 330여 년의 시차는 있지만, 일본 후쿠오카에서 운명처럼 두 종은 재회하게 되었다. 일본에 있던 두 종 중, 낙수정 종만 우여곡절 끝에 1999년 전주로 되돌아왔다.
Authors
- Joung-Hwan Ji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EONBUK SAHAK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Published
- 2025-03-30
- DOI
- https://doi.org/10.28975/jha.2025.03.30.255
- Primary Topic
- Financial Crisis of the 21st Centur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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