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ukhen the 18th-century Noron holy place seen through the『Ojukhen visitor’s book』
오죽헌은 李珥의 출생지인 연고로 복합적 상징을 함의해 왔다. 그중 하나가 이이의 학맥을 추종한 老論의 성지이다. 이이는 公論 정치를 표방하며 東·西 分黨 시기 중립을 고수하였으나, 동인에 의해 서인으로 지목된다. 이이 死後 서인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고, 이이의 학문과 經世觀을 바탕으로 자파의 立論을 형성하면서 이이는 특히 서인들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로 주목된다. 서인은 이이의 文廟 종사와 문집 간행 등의 활발한 존숭을 전개하면서 이이를 그들 학맥의 종장으로 추앙했다. 더불어 이이와 오죽헌에 대한 正祖의 각별한 관심은 오죽헌이 더욱 유명해지며 많은 참배객이 찾는 성역으로 변모하는 촉매가 되었다.서인이 노·소로 분당하는 17세기 이후 오죽헌은 노론 인사들의 주도로 중수되었고, 이들에게 주목받으며 성역화된다. 이는 노론의 영수 宋時烈의 영향이 컸다. 송시열은 이이가 朱子의 嫡傳이며 자신이 그 道統體系를 계승한다고 자부하였다. 송시열은 이이의 학문적 이론과 위상을 계승하며 이이를 道學의 종통으로 좌정시키고자 했다. 전국의 노론 인사들은 송시열의 도통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며 이이의 性理說을 토대로 학문적 입장을 정립한다.오죽헌은 노·소 간의 당쟁이 격화되는 18세기 이이와 송시열을 추종하던 굴지의 노론 인사들의 참배를 통해 세간에 더욱 알려지게 되면서 노론의 성지로 재탄생한다. 서인의 노·소 분당 후부터 붕당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는 19세기 勢道政治期 전까지 약 100년간 노론 인사들이 가장 많이 찾았다. 이러한 현상이 오죽헌 방명록인 『심헌록』에 수록된 방문자들의 면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Authors
- Sang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Cheonggyeo History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33835/cghs.29.7
- Primary Topic
- Urban and spatial planning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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