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XVI’s Counter-Revolutionary Tentative and the Bastille
삼부회의 제3신분 대표들은 1789년 6월 17일 국민의회를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왕권에 도전했다. 루이 16세는 6월 23일 어전회의에서 국민의회의 결정을 불법적이고 위헌적이라고 선언하고 신분별 회의를 유지하려 했지만, 나흘 뒤 결국 세 신분 합동회의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정은 구체제와 절대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하기로 했다. 루이 16세는 7월 11일 재무총감 네케르를 해임하고, 브르퇴이 남작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 소식을 궁정 쿠데타의 신호로 여긴 파리 시민들은 국민의회와 파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들었고, 7월 14일 바스티유 요새를 공격함으로써 반혁명 기도를 좌절시켰다. 루이 16세는 7월 17일 파리 시청을 방문함으로써 혁명의 승리를 인정하였다. 이에 프랑스 전역에서 반란이 확산하였고, 혁명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Authors
- YounDuk Par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ISTORY JOURNAL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51786/rchf.2025.02.52.77
- Primary Topic
- Historical Studies and Socio-cultural Analysi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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