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litary Mobilization of Sogdians during the Founding Period of the Tang Dynasty and Its Background

본고의 연구 목적은 唐의 건국과 중국 재통일 과정에서 蕃將으로 활동했던 소그드인의 특징과 당이 소그인들을 군사적으로 활용했던 배경을 규명하는 데에 있다. 소그드계 번장은 安祿山·史思明처럼 기마 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돌궐화된 소그드인, 北朝 이래로 소그드인 취락을 건설하며 중국에 정착했던 소그드인으로 구별된다. 전자가 돌궐의 영역 안에서 胡部의 형태로 거주하다가 630년 동돌궐의 멸망을 계기로 당으로 이주한 반면, 후자는 최근 20년간 출토자료의 발굴로 인해 새롭게 밝혀진 자들로서 본고의 검토 대상에 해당한다.隋末唐初 소그드인 武官에 관한 최근 연구들로 인해 北朝~唐이 軍府官-鄕兵의 방식으로 소그드인의 군사 능력을 이용했음이 입증되었다. 상업 민족으로만 이해되었던 소그드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선행 연구들은 일부 지역에서 발견된 석각자료에 대한 사례 연구에 머물렀고, 상대적으로 문헌사료에 소홀했다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唐朝가 소그드인들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배경은 연구 공백으로 남아 있다.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建國期 唐의 軍勢와 소그드 隊商의 전략적 가치를 되짚어 보았다. 李淵은 불과 3만의 병력으로 거병했다.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그는 東突厥의 군사원조를 도모했으나, 오히려 돌궐의 “以華制夏” 전략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연 집단에 합류했던 자들이 바로 何潘仁, 史萬寶 등 北朝이래 장안에 거주하고 있던 소그드 隊商의 리더였다. 그들은 주변의 할거 세력을 제압하면서, 이연의 장안 입성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국제 무역의 특성상 소그드 隊商은 自衛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상업을 통해 축적한 경제력과 교역망에 기반한 정보력도 뛰어났다. 이러한 전략적 가치로 인해 당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소그드인을 적극적으로 招募함으로써, 장안에서의 건국과 河西로의 세력 확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DAEGU HISTORICAL REVIEW
Published
2025-02-28
DOI
https://doi.org/10.17751/dhr.158.271
Primary Topic
Eurasian Exchange Networks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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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litary Mobilization of Sogdians during the Founding Period of the Tang Dynasty and Its Background

Kichon Lee
THE DAEGU HISTORICAL REVIEW
Eurasian Exchange Ne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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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litary Mobilization of Sogdians during the Founding Period of the Tang Dynasty and Its Background

Kich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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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의 연구 목적은 唐의 건국과 중국 재통일 과정에서 蕃將으로 활동했던 소그드인의 특징과 당이 소그인들을 군사적으로 활용했던 배경을 규명하는 데에 있다. 소그드계 번장은 安祿山·史思明처럼 기마 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돌궐화된 소그드인, 北朝 이래로 소그드인 취락을 건설하며 중국에 정착했던 소그드인으로 구별된다. 전자가 돌궐의 영역 안에서 胡部의 형태로 거주하다가 630년 동돌궐의 멸망을 계기로 당으로 이주한 반면, 후자는 최근 20년간 출토자료의 발굴로 인해 새롭게 밝혀진 자들로서 본고의 검토 대상에 해당한다.隋末唐初 소그드인 武官에 관한 최근 연구들로 인해 北朝~唐이 軍府官-鄕兵의 방식으로 소그드인의 군사 능력을 이용했음이 입증되었다. 상업 민족으로만 이해되었던 소그드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선행 연구들은 일부 지역에서 발견된 석각자료에 대한 사례 연구에 머물렀고, 상대적으로 문헌사료에 소홀했다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唐朝가 소그드인들을 군사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배경은 연구 공백으로 남아 있다.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建國期 唐의 軍勢와 소그드 隊商의 전략적 가치를 되짚어 보았다. 李淵은 불과 3만의 병력으로 거병했다.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그는 東突厥의 군사원조를 도모했으나, 오히려 돌궐의 “以華制夏” 전략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연 집단에 합류했던 자들이 바로 何潘仁, 史萬寶 등 北朝이래 장안에 거주하고 있던 소그드 隊商의 리더였다. 그들은 주변의 할거 세력을 제압하면서, 이연의 장안 입성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국제 무역의 특성상 소그드 隊商은 自衛할 수 있는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상업을 통해 축적한 경제력과 교역망에 기반한 정보력도 뛰어났다. 이러한 전략적 가치로 인해 당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소그드인을 적극적으로 招募함으로써, 장안에서의 건국과 河西로의 세력 확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THE DAEGU HISTORICAL REVIEWVol.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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