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erial Japan's Aviation Policy in the 1930s and the Efforts of Patricians in Daegu to Attract Aerodrome
1929년 만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정기항공은 조선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개통했다. 대한해협의 도해에서 항공기술의 제약으로 요구된 중간기착지는 과거 시험비행에서 주로 활용되었던 대구 대신 울산으로 정해졌다. 대구 지역 유지들은 비행장설치기성회를 조직해 울산의 비행장을 대구로 이전하려는 노력에 나섰다. 이들은 울산비행장의 열악함과 대구의 市勢를 강조하면서 임시 비행장으로 쓰였던 대구의 제80보병연대 연병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이전하는 방안은 제80연대 연병장을 정식 비행장으로 전환하기 어렵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신설로 수정되었다. 일제는 조선 남부의 비행장을 중간기착지로서만 활용했으므로 비용이 드는 이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구 지역 유지들이 부지 제공을 담보로 유치 협상에 나섰지만, 일제는 소극적인 입장을 여전히 고수했다.일제의 태도 변화는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만주와 일본의 연결 속도 증진 정책을 계기로 야기되었다. 일제는 비행기와 철도를 결합한 방식으로 구상된 부관연락의 속도 향상 방안에 따라 경부선 등 종관철도의 결절점인 대구에 비행장을 두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구 지역의 유지들은 비행장 유치가 유력해지자 부지 기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대구비행장의 조성을 결정했으며, 지역 내 후보지 가운데 동촌을 사업부지로 선정했다. 여기에서는 대구비행장의 조성을 대구 지역 유지들의 유치 노력에 의한 성과보다 일제의 의도에 따른 결과로 보았다.
Authors
- Kidoong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DAEGU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17751/dhr.158.165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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