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sion of the Japanese(Wa) government in the 650s and several problems of the 2nd and 3rd Kentoushi
645년 소아씨 정권을 타도한 뒤 성립한 효덕천황의 조정은 기존의 친백제 노선에서 친당ㆍ신라 노선으로 외교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그것은 당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당의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하였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서는 신라의 도움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서 왜국이 지불해야 할 내용은 신라에 대한 군사 협력이었다. 문물의 수용과 군사 협력의 교환이 왜국과 신라ㆍ당 사이의 실제적 거래 내용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별고에서 신라를 통해 전해진 군사 협력의 범위가 당의 출병과 백제의 멸망이라는 왜국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것임을 감지하게 되면서 친당ㆍ신라 노선의 추종에 의문이 제기되고 여기에 중대형황자가 세를 규합하여 효덕천황과 정치적으로 결별하게 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본고는 그러한 와중에 파견된 653년의 2차 견당사와 3차 견당사의 제문제를 검토하였다. 특히 2차 견당사가 백제를 경유하여 도당하였으며 귀국시에는 백제ㆍ신라의 送使를 대동하는 기이한 모양새를 연출한 점, 3차 견당사가 2차 견당사의 귀환을 기다리지 않고 신라를 경유하여 도당한 점을 주목하였다. 종래 이를 등거리 외교의 일환으로 평가해 왔으나 이미 왜국 내부의 권력 관계가 효덕천황과 중대형황자의 내부 분열 양상을 노정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조정의 일치된 외교노선의 반영이 아니라 정권 분열의 소산물임을 지적하였다. 효덕천황과 중대형황자의 내부 분열 양상은 2차ㆍ3차 견당사의 파견 문제에서도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Authors
- Jae-seok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DAEGU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17751/dhr.158.315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