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an-fang emissaries in the Ming dynasty and long-distance trade in 16th century Asia

천방은 명의 서역 ‘조공국’ 중에 타 국가와는 달리 명과 외교 관계에 기반한 사신의 왕래가 없었고, 명과의 거리도 먼데다 당시에 독립 정권을 세운 것도 아니어서, 명의 기록에 종종 등장하는 ‘천방사신’이 실제로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에서 온 사신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천방 사신의 명 방문 역사를 살펴보았다. 우선 15세기에는 정화의 항해와 관련하여 명과 천방이 처음으로 조우했는데, 이는 단발성에 그친 만남이었지만 메카와 그 종주국인 이집트는 중국과의 만남과, 그 과정에서 얻은 이익에 많은 감명을 받아 명에 지속적인 접촉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천방사신은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15세기에는 중국으로 사신이나 물자를 보내기 어려웠고, 사신이 도달하더라도 명에 의해 억류되었다.16세기에 명과 천방의 관계는 이전과는 달리 명에서 천방 사신을 초빙함으로써 재개되었다. 명은 말의 형질 개량을 위해 아랍말인 西馬를 가지고 입조하도록 천방에 소식을 전했고 근 10년만에 천방 측에서 아랍말과 함께 입조했다. 이후 천방 사신은 1520년대부터 정기적으로 명에 사신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천방의 사신을 두고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한 가지는 천방 사신이 사실상 천방에서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방을 비롯한 서역 사신 중에 각국의 왕을 지칭하는 이의 수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문제는 16세기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아시아의 장거리 무역에서 각 서역 도시의 대리인이 중국 변경에 자리하며 조공 ‘무역’을 처리하는 상황에 해당할 수 있다. 메카는 서인도양의 주요 항구이자, 성지라는 이점 때문에 국제 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상인들이 거점으로 삼기 좋은 장소여서, 그곳 상인들이 아시아 전역과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중국 서북 변경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한편 후자의 문제는 16세기 초, 중·서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왕조교체로 인해 주요 조공국이 느슨한 연맹 국가로 변화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명에서는 왕의 사신을 칭하는 자의 수가 증가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슬람권의 정치적 상황을 다소간 파악하였으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으므로 사신의 수와 왕래 주기 등을 규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러한 규정은 아시아의 장거리 무역 패턴과 맞아떨어졌으므로 16세기 중반 이후 명의 조공무역은 아시아를 관통하는 장거리 무역에 편입되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Journal of School Social Work
Published
2025-02-28
DOI
https://doi.org/10.37924/jssw.97.10
Primary Topic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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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an-fang emissaries in the Ming dynasty and long-distance trade in 16th century Asia

Ju Yeon Lee
Journal of School Social Work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rticle

Tian-fang emissaries in the Ming dynasty and long-distance trade in 16th century Asia

Ju Ye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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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천방은 명의 서역 ‘조공국’ 중에 타 국가와는 달리 명과 외교 관계에 기반한 사신의 왕래가 없었고, 명과의 거리도 먼데다 당시에 독립 정권을 세운 것도 아니어서, 명의 기록에 종종 등장하는 ‘천방사신’이 실제로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에서 온 사신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천방 사신의 명 방문 역사를 살펴보았다. 우선 15세기에는 정화의 항해와 관련하여 명과 천방이 처음으로 조우했는데, 이는 단발성에 그친 만남이었지만 메카와 그 종주국인 이집트는 중국과의 만남과, 그 과정에서 얻은 이익에 많은 감명을 받아 명에 지속적인 접촉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천방사신은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혼란으로 인해 15세기에는 중국으로 사신이나 물자를 보내기 어려웠고, 사신이 도달하더라도 명에 의해 억류되었다.16세기에 명과 천방의 관계는 이전과는 달리 명에서 천방 사신을 초빙함으로써 재개되었다. 명은 말의 형질 개량을 위해 아랍말인 西馬를 가지고 입조하도록 천방에 소식을 전했고 근 10년만에 천방 측에서 아랍말과 함께 입조했다. 이후 천방 사신은 1520년대부터 정기적으로 명에 사신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천방의 사신을 두고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한 가지는 천방 사신이 사실상 천방에서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방을 비롯한 서역 사신 중에 각국의 왕을 지칭하는 이의 수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전자의 문제는 16세기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아시아의 장거리 무역에서 각 서역 도시의 대리인이 중국 변경에 자리하며 조공 ‘무역’을 처리하는 상황에 해당할 수 있다. 메카는 서인도양의 주요 항구이자, 성지라는 이점 때문에 국제 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상인들이 거점으로 삼기 좋은 장소여서, 그곳 상인들이 아시아 전역과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중국 서북 변경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한편 후자의 문제는 16세기 초, 중·서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왕조교체로 인해 주요 조공국이 느슨한 연맹 국가로 변화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명에서는 왕의 사신을 칭하는 자의 수가 증가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슬람권의 정치적 상황을 다소간 파악하였으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으므로 사신의 수와 왕래 주기 등을 규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러한 규정은 아시아의 장거리 무역 패턴과 맞아떨어졌으므로 16세기 중반 이후 명의 조공무역은 아시아를 관통하는 장거리 무역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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