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Mahan's history in the Yeongsan River basin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영산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상당히 발달하였다. 마한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고조선계 유민의 유입과 그 문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그에 비추어 볼 때 우월한 세력 집단의 존재가 상정되는데, 적어도4개의 거대 세력 집단이 있었고 이를 각각 하나의 ‘國’으로 비정해 볼 수 있다. 2~3세기 영산강 유역의 물질문화는 앞 시대에 비해 쇠퇴한 양상이다. 전반적 인물질문화의 변동이 확인되는 가운데 지역의 세력 집단이 재편되는 흐름이다. 3세기 후반 들어 거대 분구묘에 대형 옹관이 매장되는 특징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동력은 호서지역 마한 세력과의 교류에 있었다고 판단한다.『진서』 장화전에 등장하는 마한 신미제국은 거의 모든 연구자가 전남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신미제국은 『일본서기』의 ‘침미다례’ 또는 <양직공도>의 ‘지미’와 같은 실체 논의되기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별개로 파악하였다. 영산강 유역 물질문화의 변동과 지형지세에 비추어 볼 때 신미제국은 전남 지역 안에서도 영산강 내해 안쪽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280년대 신미제국이 국제무대에 등장함은 영산강 유역에서 거대 분구묘와 대형 옹관이 등장하는 추이와 일치한다. 3세기 영산강 유역의 세력 집단은 이웃한 마한 세력과의 중장거리 교역 및 상호 긴밀한 교류를 통해 성장하였고, 그러한 배경에서 신미제국과 낙랑·대방군과의 교섭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Authors
- J. Je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School Social Work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37924/jssw.97.2
- Primary Topic
-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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