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tablishment of Farming Culture in the Yeongsan River Basin
본고는 영산강유역의 재배작물 현황을 검토하고, 유적 분포를 통해 농경사회의 등장, 농경 집약화 과정을 검토한 것이다. 선사∼고대의 영산강유역 사람들은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생업을 이어갔다. 신석기시대에는 영산강의 범람이라는 자연재해를 피할 수 있는 지형면에 취락을 조성하거나 바다를 생업의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에 유적을 조성하였지만, 청동기시대부터 점차 영산강유역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지형과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갔다.영산강유역에서 벼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는 청동기시대부터 등장하는데, 청동기시대 주민들은 영산강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여 농경과 수산자원, 육산자원 등을 복합적 생업기반으로 삼았다. 청동기시대 중기부터는 영산강 중류의 나주, 광주, 함평 일대로 인구 집중 및 증가현상이 나타나고, 취락은 전기와 동일한 독립된 소규모 취락의 농경생산체제와 대규모 취락을 중심으로 중소형 취락이 결속하는 농경생산체제가 공존하였다.원삼국시대에도 농경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었는데, 특히 대두(大豆)가 활발하게 재배되고, 벼농사와 밭농사를 병행하는 이원적 농경형태를 채택함으로써 당시의 경작지 지력 보완, 생계 위기의 효과적 관리를 도모하였다. 이러한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영산강유역이 수로로서 교통과 물류의 결절지로 부각되면서 고대사회로 전환되고 교역의 거점으로 자리 잡아가게 된다.
Authors
- Seon Haeng Che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School Social Work
- Published
- 2025-02-28
- DOI
- https://doi.org/10.37924/jssw.97.1
- Primary Topic
- Agriculture, Soil, Plant Scienc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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