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862 Yi Ha-jeon(李夏銓) Scandal(獄事). and its Meaning -Examination of the Left-Podo-cheong Deung’rok(左捕廳謄錄), Chu’an-geub-Gug’an(推案及鞫案)-

1862년(철종 13) 2월에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壬戌農民抗爭이 일어났다. 국가에 의한 부세 수탈의 폐단 때문이었다. 농민 항쟁의 결과로, 정부에서는 三政釐正廳을 설치했다. 그런데, 7월에 전라도 康津 사람 李載斗가 포도청에 金順性이 李夏銓을 推戴하려는 ‘反正’을 모의했으며, 武臣들을 모아 궁궐과 이정청을 습격하려 한다는 변란 계획을 염탐하여 고변했다.포도청의 심문에서 김순성은 誣告라고 주장했지만, 李兢善이 ‘반정’ 모의를 들었다고 진술하자, 김순성은 이긍선과 이재두를 원망하며, 모의한 사실을 인정했다.鄭元容과 金汶根은 哲宗에게 推鞫을 요청했다. 추국청에서 김순성은 흉년으로 인한 쌀값의 폭등으로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반정’을 모의한 죄를 자복했고, 이긍선은 모의하려 한 사실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죄를 자복했으며, 謀反大逆罪로 사형당했다.철종은 역적들에게 농간당했다고 여긴 이하전을 제주도에 圍籬安置했다. 그러나, 이어진 海南 사람 任馹熺의 親鞫·庭鞫에서 김순성의 사주로 全羅右水虞候 朴載仁과 내통한 편지가 결정적 증거가 되어 이하전에게 賜藥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는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임술농민항쟁’과 더불어 충청도 지역의 인물과 전라도 지역의 무관들이 함께 ‘반정’을 도모한 사건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왕실 종친 중 덕흥대원군의 봉사손 이하전이 죽임을 당한 후, 이듬해인 12월에 사도세자의 후손이자, 은언군의 손자였던 철종이 후사 없이 서거하자, 정조·순조·효명세자(익종)·헌종 연간 사도세자와 그 후손의 보호를 주장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 결집하며, 은신군의 봉사손인 남연군의 손자이자 이 하응의 둘째 아들 고종이 즉위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 익종의 후사로 즉위한 고종은 이하전을 신원시켜주며, 사도세자를 莊祖로 추숭하고, 정조 연간의 개혁정치를 이어서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모든 측면에서의 제도를 재정비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Published
2025-02-28
DOI
https://doi.org/10.25232/ku.2025.63.349
Primary Topic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Controls
|||
ALL TIME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article

The 1862 Yi Ha-jeon(李夏銓) Scandal(獄事). and its Meaning -Examination of the Left-Podo-cheong Deung’rok(左捕廳謄錄), Chu’an-geub-Gug’an(推案及鞫案)-

Jeong-ja Kim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rticle

The 1862 Yi Ha-jeon(李夏銓) Scandal(獄事). and its Meaning -Examination of the Left-Podo-cheong Deung’rok(左捕廳謄錄), Chu’an-geub-Gug’an(推案及鞫案)-

Jeong-ja Kim
article en

Abstract

1862년(철종 13) 2월에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壬戌農民抗爭이 일어났다. 국가에 의한 부세 수탈의 폐단 때문이었다. 농민 항쟁의 결과로, 정부에서는 三政釐正廳을 설치했다. 그런데, 7월에 전라도 康津 사람 李載斗가 포도청에 金順性이 李夏銓을 推戴하려는 ‘反正’을 모의했으며, 武臣들을 모아 궁궐과 이정청을 습격하려 한다는 변란 계획을 염탐하여 고변했다.포도청의 심문에서 김순성은 誣告라고 주장했지만, 李兢善이 ‘반정’ 모의를 들었다고 진술하자, 김순성은 이긍선과 이재두를 원망하며, 모의한 사실을 인정했다.鄭元容과 金汶根은 哲宗에게 推鞫을 요청했다. 추국청에서 김순성은 흉년으로 인한 쌀값의 폭등으로 인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반정’을 모의한 죄를 자복했고, 이긍선은 모의하려 한 사실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죄를 자복했으며, 謀反大逆罪로 사형당했다.철종은 역적들에게 농간당했다고 여긴 이하전을 제주도에 圍籬安置했다. 그러나, 이어진 海南 사람 任馹熺의 親鞫·庭鞫에서 김순성의 사주로 全羅右水虞候 朴載仁과 내통한 편지가 결정적 증거가 되어 이하전에게 賜藥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는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한 ‘임술농민항쟁’과 더불어 충청도 지역의 인물과 전라도 지역의 무관들이 함께 ‘반정’을 도모한 사건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왕실 종친 중 덕흥대원군의 봉사손 이하전이 죽임을 당한 후, 이듬해인 12월에 사도세자의 후손이자, 은언군의 손자였던 철종이 후사 없이 서거하자, 정조·순조·효명세자(익종)·헌종 연간 사도세자와 그 후손의 보호를 주장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 결집하며, 은신군의 봉사손인 남연군의 손자이자 이 하응의 둘째 아들 고종이 즉위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 익종의 후사로 즉위한 고종은 이하전을 신원시켜주며, 사도세자를 莊祖로 추숭하고, 정조 연간의 개혁정치를 이어서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모든 측면에서의 제도를 재정비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Vol. 63(00)
Peace, Justice and strong institutions
Openalex Percentile: Top 94%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I Navigator

Ask Laika to Summarize, Analyze, and Connect papers live on the map.

Summarize Papers & Methodologies

Extract key findings, datasets, and comparative methods across publications.

Benchmark Rankings & Visual Analytics

Rank top research institutions, authors, funders, topics, and journals by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FWCI) and paper volume with instant charts.

Connect Distant Disciplines

Bridge topological clusters on the map to find hidden collaborative inters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