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o[龍塢] Jeong Gwan-won[鄭官源] and Yongojeongsa[龍塢精舍]

정관원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노사학파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고창 지역은 전통적으로 기호학파의 영향력이 강했고, 정관원이 속한 진주 정씨도 이러한 영향 아래에 있었다. 정관원은 기정진의 직전 문인인 같은 집안의 정하원에게 학문을 익힘으로써 노사학파의 재전문인이 되었다.그는 1894년 갑오경장 직전에 소과에 급제했으나, 같은 해 과거제는 한국사회에서 폐지되었다. 뒤이어 단발령과 을미사변에 이어졌고, 1896년 그는 의병에 참여했으나, 의병 활동은 곧 무위로 돌아갔다. 1899년 민영환의 추천에 의한 경기전 참봉을 사양한 뒤, 정관원은 은거의 삶을 택했다. 그 이후 그는 용오재(龍塢齋)를 짓고 강학을 통해 문인집단을 배출했고, 『용오집』과 『용오속집』을 남겼으며, 사후에는 아들인 정방규와 함께 덕림사에 배향되었다.그는 생전에 자택의 용오재에서 강학 활동을 했고, 용오정을 짓고서 말년을 보내려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방규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서 용오정을 완성했고, 1933년에서 1935년 사이에 용오정을 경의당으로 변경하고, 홍의재와 덕림사 및 상운루를 건설해서 용오정사를 완성했다.정관원의 사유는 관학의 지위 상실 이후 유학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회철학적 경향이 후퇴하고,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되는 담론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심설(心說), 경(敬)에 기초한 극기(克己)와 과욕(寡慾), 효우(孝友), 명륜(明倫)이라는 개념 등에 대한 담론들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정방규는 화서학파를 계승하는 고석진의 문인이 되었고, 손자인 정익환은 『송사유림연원록』을 통해 무장의 유학 전통을 통시적으로 정리하면서 정관원의 항목에서 100명에 이르는 문인들을 포함시켰다. 정관원을 기점으로 용오삼대(龍塢三代)라고 부를 수 있는 유학자 가계의 활동상이 근현대 무장의 유학지형에 출현한 것이다. 결국 정관원은 용오삼대로 이어지는 가학의 지속성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누적된 고창 유학의 전통과 노사학파의 학맥을 결부시켜 고창 지역의 근·현대 유학의 한 흐름을 창출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Journal of Honam Studies
Published
2024-12-31
DOI
https://doi.org/10.37996/hs.76.7
Primary Topic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Studies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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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o[龍塢] Jeong Gwan-won[鄭官源] and Yongojeongsa[龍塢精舍]

Hyang-joon Lee
The Journal of Honam Studies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Studies
article

Yongo[龍塢] Jeong Gwan-won[鄭官源] and Yongojeongsa[龍塢精舍]

Hyang-jo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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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정관원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노사학파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고창 지역은 전통적으로 기호학파의 영향력이 강했고, 정관원이 속한 진주 정씨도 이러한 영향 아래에 있었다. 정관원은 기정진의 직전 문인인 같은 집안의 정하원에게 학문을 익힘으로써 노사학파의 재전문인이 되었다.그는 1894년 갑오경장 직전에 소과에 급제했으나, 같은 해 과거제는 한국사회에서 폐지되었다. 뒤이어 단발령과 을미사변에 이어졌고, 1896년 그는 의병에 참여했으나, 의병 활동은 곧 무위로 돌아갔다. 1899년 민영환의 추천에 의한 경기전 참봉을 사양한 뒤, 정관원은 은거의 삶을 택했다. 그 이후 그는 용오재(龍塢齋)를 짓고 강학을 통해 문인집단을 배출했고, 『용오집』과 『용오속집』을 남겼으며, 사후에는 아들인 정방규와 함께 덕림사에 배향되었다.그는 생전에 자택의 용오재에서 강학 활동을 했고, 용오정을 짓고서 말년을 보내려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방규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서 용오정을 완성했고, 1933년에서 1935년 사이에 용오정을 경의당으로 변경하고, 홍의재와 덕림사 및 상운루를 건설해서 용오정사를 완성했다.정관원의 사유는 관학의 지위 상실 이후 유학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회철학적 경향이 후퇴하고,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되는 담론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심설(心說), 경(敬)에 기초한 극기(克己)와 과욕(寡慾), 효우(孝友), 명륜(明倫)이라는 개념 등에 대한 담론들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정방규는 화서학파를 계승하는 고석진의 문인이 되었고, 손자인 정익환은 『송사유림연원록』을 통해 무장의 유학 전통을 통시적으로 정리하면서 정관원의 항목에서 100명에 이르는 문인들을 포함시켰다. 정관원을 기점으로 용오삼대(龍塢三代)라고 부를 수 있는 유학자 가계의 활동상이 근현대 무장의 유학지형에 출현한 것이다. 결국 정관원은 용오삼대로 이어지는 가학의 지속성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누적된 고창 유학의 전통과 노사학파의 학맥을 결부시켜 고창 지역의 근·현대 유학의 한 흐름을 창출했다.

The Journal of Honam StudiesVol.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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