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m Jongheon and The Gobulchongrim’s historical status

이 글은 만암과 고불총림의 역사적 위상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그의 위상을 이해하는 5개의 개념을 설정하였다. 민족 교육, 포교 활동, 불교사 인식, 계율 정신, 그리고 자립 정신이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에 맞서 학교를 설립하여 우리의 언어와 지리를 가르치는 것은 민족 정신이다. 만암은 조선의 중세적 전통에서 수학하였지만, 젊은 청년들에게 신식 학문과 산업 지식을 전수하고, 도심지에 포교당을 운영한 것은 근대적 포교 의지의 발로이다. 도의국사를 추모하고 태고 보우를 종조로 추대하는 강한 신념은 투철한 불교사 인식이다. 예불과 의례, 법의에 대한 철저한 규정은 투철한 계율 정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불총림의 설립과 운영은 이상적 승가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승가의 자립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암은 광성의숙을 설립하여 승가교육의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승속을 망라한 민족 교육을 감행하였다. 광성의숙에서 수학한 여러 인물들이 백양사의 포교와 교육 등을 이끌어가는 인물로 성장하는 선순환의 결과를 가져왔다. 만암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포교를 중시하였다. 포교당은 백양사 근대불교의 시작이면서 고불총림 조직과 운영의 중요한 요소였다. 가정을 이룬 승려를 호법중(護法衆)으로 수용하여 이들의 제1 소임을 포교사라고 하였다. 이들의 활동 등으로 제주도에는 본산 가운데 가장 많은 26개소의 포교당이 활동하면서 제주불교를 부흥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만암은 한국불교의 종조에 대한 명확하고 투철한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도의국사를 ‘한국불교 선종의 국조’로 추앙하면서 백양사에 도의영각을 설립하였다. 만암은 왜색불교가 만연하는 현실에서 청규와 지계를 철저히 실천하였고, 반농반선의 자립 정신을 실천하였다. 일제강점기 수탈과 억압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승가와 중생의 상생 방안을 수행과 노동의 병행에서 찾았다. 이러한 생산불교는 출가자의 본분인 중생 구제의 또다른 방편이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Journal of Seon Studies
Published
2024-12-31
DOI
https://doi.org/10.22253/jss.2024.12.69.35
Primary Topic
Martial Arts: Techniques, Psychology, and Education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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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m Jongheon and The Gobulchongrim’s historical status

Sang-Kil Han
Journal of Seon Studies
Martial Arts: Techniques, Psychology, and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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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m Jongheon and The Gobulchongrim’s historical status

Sang-Kil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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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만암과 고불총림의 역사적 위상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그의 위상을 이해하는 5개의 개념을 설정하였다. 민족 교육, 포교 활동, 불교사 인식, 계율 정신, 그리고 자립 정신이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에 맞서 학교를 설립하여 우리의 언어와 지리를 가르치는 것은 민족 정신이다. 만암은 조선의 중세적 전통에서 수학하였지만, 젊은 청년들에게 신식 학문과 산업 지식을 전수하고, 도심지에 포교당을 운영한 것은 근대적 포교 의지의 발로이다. 도의국사를 추모하고 태고 보우를 종조로 추대하는 강한 신념은 투철한 불교사 인식이다. 예불과 의례, 법의에 대한 철저한 규정은 투철한 계율 정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불총림의 설립과 운영은 이상적 승가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승가의 자립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암은 광성의숙을 설립하여 승가교육의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승속을 망라한 민족 교육을 감행하였다. 광성의숙에서 수학한 여러 인물들이 백양사의 포교와 교육 등을 이끌어가는 인물로 성장하는 선순환의 결과를 가져왔다. 만암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포교를 중시하였다. 포교당은 백양사 근대불교의 시작이면서 고불총림 조직과 운영의 중요한 요소였다. 가정을 이룬 승려를 호법중(護法衆)으로 수용하여 이들의 제1 소임을 포교사라고 하였다. 이들의 활동 등으로 제주도에는 본산 가운데 가장 많은 26개소의 포교당이 활동하면서 제주불교를 부흥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만암은 한국불교의 종조에 대한 명확하고 투철한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도의국사를 ‘한국불교 선종의 국조’로 추앙하면서 백양사에 도의영각을 설립하였다. 만암은 왜색불교가 만연하는 현실에서 청규와 지계를 철저히 실천하였고, 반농반선의 자립 정신을 실천하였다. 일제강점기 수탈과 억압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승가와 중생의 상생 방안을 수행과 노동의 병행에서 찾았다. 이러한 생산불교는 출가자의 본분인 중생 구제의 또다른 방편이었다.

Journal of Seon Studies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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