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atus and paintings of Bosalsa Temple in Cheongju in the 17th century of Joseon Dynasty
菩薩寺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 洛迦山 자락에 자리한 古刹이다. 보살사는 淸州 士族들과 연관이 깊다. 17세기 초 『淸州韓氏世譜』(1617)와 『容齋集』(1634)이 이곳에서 간행되었다. 보살사는, 『綾 城具氏姓譜』(1576)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조 전기에도 이미 인쇄물 간행처 역할을 하고 있었고이러한 전통이 17세기로 이어져 이 지역 사족들의 족보와 문집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17세기 보살사는 청주 선비들의 특별 모임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이곳 승려들은 계회도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乙丑甲會圖>(1686)와 관련 문서인 『竹 林甲稧』이다. 이 계회도는 현재 3점이 알려져 있다. 보살사가 이 회화와 연관이 있다는 근거는 문서와 그림 모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에 “청주의 동쪽에 있는 보살사에서 모임을 가졌다”라고쓰여 있으며, 고인쇄박물관 소장본 중의 한 점은 건물에 ‘菩薩寺庵’이라고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이 그림은 ‘義仁’이 그렸는데, 당시 불화, 특히 소형 인물이 다수 등장하는 水陸會圖의 표현과 유사한 점이 많아 불화의 제작 경험이 있는 화승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화승 의인은아직 행적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보살사에 있던 승려라는 점을 통해 그가 적어도 보살사를 주근거지로 활동했던 승려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영산회괘불도>(1649)는 전란 후 보살사에서 가장 시급하게 진행했던 佛事의 결과물이다. 주불전인 극락보전이 1683년 무렵에 중건되었는데, 괘불화는 건물보다도 30여 년이나 앞선 1649년에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보살사는 당면한 재건 불사 와중에도 전란으로 죽은 많은 이들의 영혼을천도하고 재난으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자 미처 법당이 정비되기도 전에 야외에서 괘불을걸고 대법회를 열었던 것 같다. 또한 그 과정에서 17세기 보살사 중창주인 瓊特이 <영산회괘불도> 의 시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보살사 <영산회괘불도>는 조선조 후기 불화 중에서 가장 빠른 ‘靈 山會上圖’이기도 한데, 15-16세기 유통되던 『묘법연화경』의 변상판화 도상을 수용해 그려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화풍을 분석해 본 결과, 신겸은 16세기 불화의 전통을 토대로 하고 이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변용하면서 독특한 화풍의 대형불화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Authors
- Kwanghee Shi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Dongak Art History
- Published
- 2024-12-30
- DOI
- https://doi.org/10.17300/dah.2024.36.2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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