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sage and Meaning of 貫(Guan) in Korea and China
본고는 한·중에서 사용된 관(貫)이 7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검토하였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br/> 첫째, 관은 중국에서 일찍 사용되었는데. 이때 민(緡)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관은 당의 개원통보(開元通寶) 이후부터 1,000전(錢: 문(文))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이후 관은 당·송대 화폐의 단위로 정착하였고, 국가의 재정 파악때도 사용될 만큼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관은 원대에 ‘일관(一貫)’의 지폐가 발행될 만큼 중요한 화폐의 단위였다. 이후의 관은 민 혹은 관(串)과 혼용되기도 하였고, ‘관-량(兩)-문’의 체계였다.<br/> 둘째, 한국에서 관은 금속 화폐의 발행 시기인 고려의 자료에 그 용례가 나타난다. 고려는 성종 때 ‘이수전(二銖錢)’의 무게를 가진 문(文)을 화폐의 단위로 주조하였고, 숙종 때의 15,000관도 이와 비슷한 무게의 단위로 주조되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를 고려할 때 관은 고려전기에 화폐의 단위로 등장하였다. 특히 고려후기의 관은 원의 영향으로 명확한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다.<br/> 셋째, 관은 조선 초기에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다가 후기의 『속대전(續大典)』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1,000문(文)의 화폐의 단위로 정착하였다. 이때 화폐의 단위는 관-량-전(錢)-문의 체계로 사용되었다. 조선은 인조 때 일수전(一銖錢), 숙종 때 ‘2전(錢) 5분(分)’의 무게를 가전 동전을 주조하였고, 이러한 동전의 무게를 기반으로 관이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고, 때때로 민과 병용되기도 하였다.<br/> 넷째, 관은 20세기에 이르러 먼저 중국에서 화폐의 단위로 소멸되었다. 이어 관은, 한국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화폐의 단위에서 대한제국의 도량형법(1909년)의 실시 이후 무게의 단위로 바뀌었다. 이는 일본의 도량형법에서 무게의 단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후 관은 한국에서 해방이후 일정기간 동안 무게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Authors
- Jong‐Bong Lee (ORCID: https://orcid.org/0000-0003-2235-1912)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istory & the Boundaries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52271/pkhs.2024.12.130.71
- Primary Topic
-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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