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Yangban Shim No-sung’s Life in Exile in Gijang during the Early 19th Century : A Mixture of Conflicts and Exchanges
沈魯崇(1762~1837)은 아버지 심낙수의 관직 생활, 자신의 성균관 수학과 관직 생활 등으로 서울에 살기도 하고, 많은 시간을 고향인 파주에서 보냈다. 그는 1801년 기장현으로 유배되었다. 기장은 처음으로 가는 ‘낯선’ 공간이었다. 기장에 도착한 후 거주지로 삼을 謫所 마련이 어려웠다. 그리고 적소에 머물 때 기장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그 원인은 進士인 양반 심노숭과 기장 사람들 사이에서의 호칭과 대우 문제였다. 유배인을 싫어하는 기장 문화도 원인이었다. 그러나 심노숭의 학문에 관심이 있었던 지역의 유생과 아전, 學童과는 소통과 교류가 활발하였다. 또한 일상 속에서 다양한 물자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1806년 解配될 때까지 심노숭은 학문적 교류, 물자의 교류 등 다양한 기장 사람들과 다층적 교류를 이어 나갔다. 5년 3개월 동안의 교류와 소통은 심노숭이 解配되어 기장을 떠날 때 가장 잘 드러났다. 기장 사람 5명과 심노숭은 ‘千里一心稧’를 만들어 해배 이후에도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이 글은 심노숭이 쓴 南遷日錄을 중심으로, ‘낯선’ 공간에서 갈등과 교류를 겪으면서 지역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구성하고, 관계망을 확장해 나가는 유배인을 고찰한 것이다. 심노숭뿐만 아니라 양반 유배인이 유배지에서 겪을 수 있는 또 다른 일상의 경험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Authors
- Heung-Sook Ya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istory & the Boundaries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52271/pkhs.2024.12.130.149
- Primary Topic
-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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