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est Sea Campaign of the Later Baekje Navy and the Response of Goryeo
고려는 태조 15년(932) 9월과 10월에 걸쳐 후백제 수군에게 공격받으면서 수군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태조가 후백제군의 기습을 직접 받았으며, 약탈을 당하여 큰 물적 피해를 입었다.<br/> 후백제 수군의 파상공세에 휘말린 고려의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마련한 이는 당시 곡도(지금의 백령도)에 유배 중이었던 유금필이었다. 그는 후백제 수군이 고려 수군의 본진을 들이쳐 대파하고 이어 연해 지역을 공략하였으나 고려 수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든 전력화할 수 있으나 조직되지 않았던 곡도와 포을도(지금의 대청도)의 장정을 모으고 전함을 수리하며 파괴된 수군력을 재건하려 하였다.<br/> 유금필의 사례는 직접 후백제와 대치하는 곳이 아니라서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한동안 방치되었던 섬 지역에 대한 고려 정부의 장악력을 높이고, 이들 섬의 인적·물질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시도를 촉진하는 실마리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유금필은 붕괴된 고려 수군을 재건하는 데 적절한 방법을 보이고 고려 정부의 대응을 선도하였다. 고려 정부는 유금필의 수군 재건 방법을 수용하였고, 태조는 유금필의 노력에 감격하며 그를 재등용하였다. 전반적인 유금필의 군사적 능력에 덧붙여 수군에서의 성과가 두드러졌기 때문에 유금필의 복귀에는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br/> 곡도·포을도 정도 규모의 섬에 있는 병력 예비자원과 전함으로 전용할 수 있는 배를 징발하여 수군을 재건하는 모델은 태조 15년에 파괴되었던 고려 수군을 재건하는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고려 수군 재건 시도는 추락한 고려와 태조의 위신을 회복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후삼국 통일전쟁에서 잠시 위기를 겪은 고려가 위력을 되찾는 데 힘을 더해주었다. 아울러 고려의 주요한 호족이었던 유금필의 정치적 재기를 가능하게 하였고, 고려 중앙정계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br/> 한편 후백제 수군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고려는 육상에서 태조가 직접 반격에 나서서 후백제의 전략적 요충인 일모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로써 고려는 후백제 수군에게 당한 대패의 충격을 줄이고, 통치 기반이 흔들리는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Authors
- C.H.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Sahak Yonku The Review of Korean History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31218/trkh.2024.12.156.5
- Primary Topic
- Marine and Coastal Research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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