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areness of Seungbyeong and Denial of Joseon Buddhism in Modern Japan

일본과 한국불교에서는 과거 역사에 실제로 승병이 존재하였고 이른 시기부터 승려이면서도 병사를 겸직하는 이질적 존재로 주목을 받았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일본불교사 연구에서는 승병을 불교의 가르침에서 일탈한 존재로 인식하고, 일본불교사에서 잘못된 활동을 전개했던 사람들로써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기에 일본인은 조선에 진출하고 조선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19세기 말에도 운영되던 조선승병을 목격하고 자신들의 기술에 담았다.이 글은 그때 기술된 일본인의 승병 담론에 주목하여 그것이 조선불교를 부정하는 시각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았다. 19세기 말 일본인은 조선승병을 보고 기체(奇體), 기묘한 관습, 일본 히에이잔(比叡山)과 같다고 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승려가 직접 무기를 드는 것은 조선불교 쇠퇴의 상징이라고 지적되었다. 이는 일본승병에 대한 일본 국내의 부정적 평가와 인식을 계승한 것이다. 일본인이 남긴 기술을 보면 일본과 조선을 가리지 않고 ‘승병’이라는 존재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며 불교에서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조선승병도 당시의 시대상과 어울리지 않은 존재로 부정되었다. 그런데 조선승병이라고 해도 남·북한산성에 두어진 승병 거점인 중흥사와 개원사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중흥사는 승려가 군사적 면에 많이 치우친 반면, 개원사는 세속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조선승병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었고 ‘승병’이라는 존재가 부정적으로만 평가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일본승병 연구에서는 승병이 가르침에서 일탈한 승려라는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승병의 내부구조나 불교 경전을 통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승병도 19세기 말 일본인이 조선불교 쇠퇴의 상징으로 파악하였던 평가와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승병을 포함한 일본인의 조선불교 담론에는 일본불교와의 비교가 투영되었기 때문에 조선승병은 당시 조선 사회나 시대 배경과 같이 검토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Published
2024-12-31
DOI
https://doi.org/10.21718/eabc.2024.66.14
Primary Topic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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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reness of Seungbyeong and Denial of Joseon Buddhism in Modern Japan

Hirokazu Ogawa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rticle

Awareness of Seungbyeong and Denial of Joseon Buddhism in Modern Japan

Hirokazu Og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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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일본과 한국불교에서는 과거 역사에 실제로 승병이 존재하였고 이른 시기부터 승려이면서도 병사를 겸직하는 이질적 존재로 주목을 받았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일본불교사 연구에서는 승병을 불교의 가르침에서 일탈한 존재로 인식하고, 일본불교사에서 잘못된 활동을 전개했던 사람들로써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기에 일본인은 조선에 진출하고 조선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19세기 말에도 운영되던 조선승병을 목격하고 자신들의 기술에 담았다.이 글은 그때 기술된 일본인의 승병 담론에 주목하여 그것이 조선불교를 부정하는 시각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았다. 19세기 말 일본인은 조선승병을 보고 기체(奇體), 기묘한 관습, 일본 히에이잔(比叡山)과 같다고 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승려가 직접 무기를 드는 것은 조선불교 쇠퇴의 상징이라고 지적되었다. 이는 일본승병에 대한 일본 국내의 부정적 평가와 인식을 계승한 것이다. 일본인이 남긴 기술을 보면 일본과 조선을 가리지 않고 ‘승병’이라는 존재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이며 불교에서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조선승병도 당시의 시대상과 어울리지 않은 존재로 부정되었다. 그런데 조선승병이라고 해도 남·북한산성에 두어진 승병 거점인 중흥사와 개원사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중흥사는 승려가 군사적 면에 많이 치우친 반면, 개원사는 세속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조선승병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었고 ‘승병’이라는 존재가 부정적으로만 평가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일본승병 연구에서는 승병이 가르침에서 일탈한 승려라는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승병의 내부구조나 불교 경전을 통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승병도 19세기 말 일본인이 조선불교 쇠퇴의 상징으로 파악하였던 평가와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승병을 포함한 일본인의 조선불교 담론에는 일본불교와의 비교가 투영되었기 때문에 조선승병은 당시 조선 사회나 시대 배경과 같이 검토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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