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s Perception of the Situation in Korea before and after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Triple Intervention
본 연구는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과 이에 따른 러시아의 조선정책 변화상과 성격을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19세기 후반 정치·사회적 모순과 개항 이후 가속된 외세의 경제적 침탈 속에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어난 대규모 민중항쟁이 동학농민운동이다. 동학농민군은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 정부에 폐정개혁안을 제시하고 집강소를 설치하는 등 당대 대내외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한 청국과 일본의 군사 개입과 관련하여 주변 열강 세력은 새로운 상황 전개를 예의주시하며 기민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동학 농민운동의 구조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동학농민 자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서구 열강의 동향 역시 주목해야 한다.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은 청일전쟁의 기폭제였 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삼국간섭과 같은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동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는 동학농민군이 내걸었던 ‘반봉건·반외세’의 대상인 서구 열강, 특히 삼국간섭을 주도했던 러시아의 동학농민운동 인식과 조선정책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했다. 1860년 조선과 국경 인접 이후 러시아는 새롭게 획득한 연해주 지역의 열악한 경제·군사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야 했다. 조선과의 수호통상조약 체결(1884), 조러밀약,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경험하면서 러시아는 연해주 지역의 취약한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조선의 ‘현상유지’ 정책을 목표로 삼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은 이러한 러시아의 현상유지 정책을 위협하는 사건이었 다. 조선 주재 러시아 대리공사 드미트렙스키, 일본 주재 무관 보가크, 중국 주재 러시아공사 카시니 등 동아시아 삼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은 동학농민운동의 발생 원인과 경과 등을 수집하여 본국에 보고했다. 이들은 동학농민 봉기의 발생 원인이 조선 사회 내부의 모순에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동학농민 봉기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를 본국 정부에 피력했다. 동아시아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이 전망한 바와 같이 조선의 정세는 더욱 심각해 졌다.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조선에 들어온 청일 양국 군대의 철병 문제를 놓고 청·일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러시아는 철병 문제를 주도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영향력과 발언력을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고 청국과 전쟁을 시작하자 더 이상 러시아는 조선의 현상유지를 위한 소극적인 조정자로만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청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이 배상금, 요동 반도 할양 등 막대한 전리품을 챙기고 조선에 대한 영향을 확대하자 러시아는 이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하여 일본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삼국간섭으로 일본을 압박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게 되었다. 즉,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청·일의 대립에서 러·일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Authors
- Daniel C. Ha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Donghak nongmin hyeongmyeong yeongu (Online)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69636/jdpr.2024.3.4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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