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wareness and Response of French Diplomats and Missionaries in Chosŏn to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the Sino-Japanese War
프랑스는 한국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국가이다. 조선 정부의 천주교 금압과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선교가 1866년 병인양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86년 조선과 프랑스가 수교한 뒤, 프랑스 외교관은 조선 정부의 균세외교 정책에 편승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천주교 선교를 지원하 고 신자를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양자의 이러한 관계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의 체제 모순 및 서양 침략과 천주교에 대한 비판의식을 기반으로 성장한 동학이 민중들의 지지에 힘입어 급속하게 성장하고 1894년 농민혁명의 주체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외교관 과 선교사들은 농민혁명을 전후로 하여 동학이 반체제와 반천주교를 지향하고 있음 을 확인하였으며 동학의 활동을 예의주시하였다. 아울러 동학농민혁명에 이어 청일 전쟁이 발발하자 중립적인 자세를 고수하면서도 선교사 구출과 신자 보호에 만전을 기했다. 나아가 조선 천주교를 관할하는 뮈텔 주교는 천주교 신부의 사망을 명분으로 삼아 조선정부에 압박을 가하였다. 한편, 프랑스 외교관과 선교사들은 동학농민군의 행태와 청일전쟁의 전개 과정을 관찰하는 가운데 동학농민군이 1894년 이전과 달리 실제로는 반일 반봉건을 지향하 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동학을 비롯한 반정부운동을 鄭鑑錄에 의거한 폭도들의 반천주교 운동으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의 선교 정책을 정당화하고 영향력 을 강화하고자 했다.
Authors
- Tae‐Woong Kim (ORCID: https://orcid.org/0000-0002-1793-2483)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Donghak nongmin hyeongmyeong yeongu (Online)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69636/jdpr.2024.3.3
- Primary Topic
-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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