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and Characteristics of Royal Buddhist Shrine of Okcheonsa in the Late Joseon Dynasty
본 논문은 고성 옥천사에 왕실원당이 설치된 배경과 특징을 조선 후기 불교의 변화와 함께 고찰한 연구이다. 옥천사는 조선 후기 왕실에 종이를 공급한 사찰로, 어람지 진상사 찰로 선정된 직후 정조와 순조의 탄일불공을 설행하게 되었고, 그 후 경상좌도 병마절도 사 박규희의 후원으로 경내에 축원당을 설치하였다. 옥천사의 왕실원당은 조선 말까지 계속 운영되었고, 갑오개혁 이후 옥천사의 지역(紙役)이 폐지된 이후에도 옥천사는 고종 과 명성황후, 순종의 위패를 모신 원당으로 계속해서 역할을 하였다. 조선 전기 왕실원당으로 지정된 사찰들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사찰의 창건 또는 중수가 이루어지고 각종 면세와 면역의 특혜를 누렸던 것과 달리, 옥천사는 왕실의 잡역 공급 사찰로 지정된 이후에야 원당의 지정이 이루어졌으며, 지방 관리에 의해 원당 의 건축이 이루어졌다. 그 여파로 지역을 제외한 여타 잡역의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 다. 옥천사뿐만 아니라 이 시기 삼남 지방의 왕실원당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데, 당시 왕실원당의 특혜는 왕실의 지원보다 잡역 면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18세기 말에 이루어진 옥천사의 왕실원당 지정은 당시 삼남 지방 대찰들의 원당 설치 와 마찬가지로 사찰 경제를 피폐화시켰던 지역 등 각종 잡역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왕실 입장에서는 왕가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기도처가 필요 했고, 왕실에 봉사하는 사찰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옥천사의 입장에서는 왕실의 지역에 더해 중앙 관청과 지방 관아, 병영, 지역 토호 세력 등으로부터 쏟아지는 각종 요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왕실의 정치적 비호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러한 왕실과 사찰 간의 상호 필요에 의해 옥천사는 정조와 순조의 안녕을 발원하는 왕실원당으로 지정되었 으며, 조선 말까지 왕과 왕비, 세자를 축원하는 도량으로 역할하였다.
Authors
- Hyojeong Ta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entre for Namdo Culture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31929/namdo.2024.53.143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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