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s and Regional Characteristics of the Donghak Peasant Army in Muan, South Jeolla Province, 1894
‘湖南下道巨魁’라 불렸던 무안지역 동학농민군 지도자 배상옥은 만여명의 농민군을 이끌었다. 이 수치는 전봉준과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과 비교하면 2~5배 되는 규모였 다. 본 논문에서는 배상옥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주목하였으며,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서 무안 동학농민군의 전술적 역할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 차지하는 무안 동학농민군의 위상과 함께 지역적 특징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이를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안 동학농민군은 전주성 철수 직후부터 무장을 강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남원에서의 김개남이나 순천을 근거지로 활동한 김인배와 같이 일종의 군사적인 역할 분담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나주성의 수성군이 전주성에서 철수하던 동학농민 군을 공격하는 등 위협적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와 함께 나주성 공략에 필요한 군사적 지원을 담당해야만 했다. 따라서 배상옥은 전주성 철수 직후부터 대월리를 근거지로 해서 인근 지역을 순회하며 군비 확보와 군사 훈련 등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둘째 무안 동학농민군은 강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후방 지원이라는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최경선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나주성 공략에 군사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장흥이나 해남, 목포 등지를 순회하면서 군사적 위세를 과시하기도 하였 다. 특히 재봉기 당시에는 후방 거점 확보를 위해 북상하지 않고 손화중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나주성을 협공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다. 셋째 나주성 공략 작전이 실패한 이후 무안 동학농민군은 전라 서남부 지역 동학농민 군의 퇴로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전봉준의 공주 공략 실패로 동학농민군의 패 색이 짙던 시점에서 그들이 재기를 도모하고 몸을 피하기 위해서는 해안로 확보가 필요 했다. 따라서 배상옥은 고막포 전투 이후 잔여세력을 이끌고 해남의 우수영을 공략하고 자 하였다. 하지만 통위영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퇴로 확보에 실패하게 되었 다. 이번 패배는 전라 서남부지역 동학농민군의 피해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Authors
- Donghyun Ho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entre for Namdo Culture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31929/namdo.2024.53.229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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