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rfare in Kimch’ŏn during the Imjin War of 1592 and the Response of the Korean Forces to the Japanese Invasion
1592년 여름 일본군과 조선군 사이에 가장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진 곳은 경상 우도였다. 이시기 이 지역은 전라도를 침공하려는 일본 제6군과 여기에 맞선 곽재우ㆍ정인홍ㆍ김면 부대 간의 공방전으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일본군은 의령의 기강 도하 작전에서 곽재우 부대의 저항에 부딪혔고, 김산ㆍ지례에서 무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김면 부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7월 초순 전라도 무주와 금산, 그리고 경상도 지례 등 세 곳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되었던 일본군의 여름 대공세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의병 및 관군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무산되었다.1592년 가을 이후 전세는 점차 조선군 측으로 기울어 갔다. 조선군은 일본 제7군의 양대 거점인 개령과 성주 수복에 전력을 집중했지만, 일본군의 대응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은 일본군이 철군을 단행했던 1593년 2월 중순까지 김산ㆍ개령과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강대강으로 대치했다. 1592년 여름 일본군의 대공세와 그해 가을ㆍ겨울 조선군의 반격, 그 리고 일본군의 대응이 지루하게 지속되면서, 오늘날 김천지역은 임진왜란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전장이자 피해가 가장 집중되었던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Authors
- Sung Woo Kim (ORCID: https://orcid.org/0000-0003-4591-1943)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21568/cdha.2024.12.111.51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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