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tablishment and Succession of the Ongju Court in the King Yeongjo's Era - Focusing on the Hwasun Ongju [和順翁主] and Wolshengyu [月城尉] Courts -
영조는 효장세자와 사도세자 외에 정빈 이씨ㆍ영빈 이씨ㆍ귀인 조씨ㆍ숙의 문씨(문녀)와 사이에서 많은 옹주를 낳은 딸 부자였다. 그는 왕으로서 국정을 책임지는 일 외에 여느 조선의 아버지들처럼 자녀를 잘 기르고 가정을 꾸리며 책임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흔히 왕실 소속이 되는 것을 부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가지게 되는 것으로 상상하지만, 영조가 옹주들을 여러 가문의 자제들과 결혼시키고 출합시킬 때에는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넘을 수 없는 암묵적 선이 존재했고, 그 한계 안에서 齊家해야만 했다.이 글은 영조의 큰 딸로 가장 먼저 결혼하고 출합한 화순옹주-월성위 궁가의 성립과정을 검토하여 실제 ‘공적 한도 내에서의 제가’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살펴보았다. 영조는 자신의 본궁이 었던 창의궁과 사친궁으로서 승계한 십자가궁과 이현궁, 새롭게 건립한 사우궁 등을 활용해 옹주 궁가를 마련해 국가 재정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려 했다.화순옹주-월성위 궁가는 일반적인 옹주-의 빈궁으로서 역할 외에도, 세자를 제외하고 다른 왕자가 없었던 영조 일가를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했다. 화순옹주 부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화순옹주-월성위 궁가는 월성위 가문의 승계 원칙에 따라 여러 차례 후사를 세우며 승계되었고, 궁가 계승자들의 왕실 지친으로서 공적 역할도 지속되었다.
Authors
- Jiyoung Kim (ORCID: https://orcid.org/0009-0004-9204-0735)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21568/cdha.2024.12.111.107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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