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 between Bukin and Namin Party and treatment of Bukin in Gyeongsang-do before and after King Injo Restoration(仁祖反正)

이 연구는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 때까지 경상도 지역에서 전개된 남인과 북인 사이의 정치적 갈등과 인조반정 이후 지역사회 내에서 북인계를 처벌하는 것을 살펴 본 것이다.임진왜란이 끝난 후 경상도지역에서 전개된 갈등은 전쟁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이었으며, 광해군 정권 성립 이후 중앙 정계의 동향과 연결되어 일어난 갈등을 향촌 단위에서 해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쟁 당시 경상도 지역 사족들은 의병 활동 등을 통하여 지역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며, 재지사족들은 향안을 중수하고 향약을 실시함으로써 재지사족 중심의 지역 질서를 확립하였다.그러나 광해군 정권이 성립하자 정인홍 등 경상우도 지역에 기반을 둔 남명학맥이 약진하면서 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퇴계계 재지사족들과 남명계 재지사족들 사이에서 갈등이 나타났다. 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남명계와 퇴계계가 격렬하게 부딪친 대구지역이었다. 대구지역은 인조반정 이후 정인홍이 몰락하면서 퇴계계가 주도권을 장악하였지만 남명계의 인사들도 인조대에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인조반정 이후 경상우도 지역은 이전까지 우세하였던 남명계 문인들 중에서 내암계가 중앙정계에서 타격을 크게 받으면서 몰락하였으나, 경상좌도 지역은 향회를 통하여 대북인(大北人)과 대북부화인(大北附和人)을 처벌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의 처벌과 지역에서의 향벌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도 보인다. 대북계는 경상우도 지역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경상좌도 지역에서도 의병 및 학문적 연계를 통하여 우호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 대북관련 인사들을 처벌하면서 처벌수위가 낮아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지역을 재편하면서 중앙과 지방의 입장이 차이가 있었던 것에 그 이유가 있었으며, 처벌의 원칙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s
Published
2024-12-31
DOI
https://doi.org/10.31309/skht.78.202412.3
Primary Topic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Controls
|||
ALL TIME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article

Conflict between Bukin and Namin Party and treatment of Bukin in Gyeongsang-do before and after King Injo Restoration(仁祖反正)

Hyeong Su Kim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s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rticle

Conflict between Bukin and Namin Party and treatment of Bukin in Gyeongsang-do before and after King Injo Restoration(仁祖反正)

Hyeong Su Kim
article en

Abstract

이 연구는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 때까지 경상도 지역에서 전개된 남인과 북인 사이의 정치적 갈등과 인조반정 이후 지역사회 내에서 북인계를 처벌하는 것을 살펴 본 것이다.임진왜란이 끝난 후 경상도지역에서 전개된 갈등은 전쟁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이었으며, 광해군 정권 성립 이후 중앙 정계의 동향과 연결되어 일어난 갈등을 향촌 단위에서 해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쟁 당시 경상도 지역 사족들은 의병 활동 등을 통하여 지역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며, 재지사족들은 향안을 중수하고 향약을 실시함으로써 재지사족 중심의 지역 질서를 확립하였다.그러나 광해군 정권이 성립하자 정인홍 등 경상우도 지역에 기반을 둔 남명학맥이 약진하면서 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퇴계계 재지사족들과 남명계 재지사족들 사이에서 갈등이 나타났다. 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남명계와 퇴계계가 격렬하게 부딪친 대구지역이었다. 대구지역은 인조반정 이후 정인홍이 몰락하면서 퇴계계가 주도권을 장악하였지만 남명계의 인사들도 인조대에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인조반정 이후 경상우도 지역은 이전까지 우세하였던 남명계 문인들 중에서 내암계가 중앙정계에서 타격을 크게 받으면서 몰락하였으나, 경상좌도 지역은 향회를 통하여 대북인(大北人)과 대북부화인(大北附和人)을 처벌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의 처벌과 지역에서의 향벌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도 보인다. 대북계는 경상우도 지역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경상좌도 지역에서도 의병 및 학문적 연계를 통하여 우호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 대북관련 인사들을 처벌하면서 처벌수위가 낮아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지역을 재편하면서 중앙과 지방의 입장이 차이가 있었던 것에 그 이유가 있었으며, 처벌의 원칙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sVol. 78
Openalex Percentile: Top 58%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I Navigator

Ask Laika to Summarize, Analyze, and Connect papers live on the map.

Summarize Papers & Methodologies

Extract key findings, datasets, and comparative methods across publications.

Benchmark Rankings & Visual Analytics

Rank top research institutions, authors, funders, topics, and journals by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FWCI) and paper volume with instant charts.

Connect Distant Disciplines

Bridge topological clusters on the map to find hidden collaborative inters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