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ftermath of War in the Late Goryeo Dynasty and the Emergence of Recording Consciousness
이 글에서는 전쟁과 같은 참화에서 피해자의 이야기가 기록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전제 아래, 인물전의 분석을 통해 14세기 말이 이러한 기록 의식이 대두한 시점이라고 주목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여러 전란으로 인명 피해가 심했으나, 14세기 전반까지 무명의 피해자를 호명하여 기록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곡·이색의 인물전은 자신들이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한정되었다.그러나 14세기 말, 이색보다 한 세대 아래인 정도전·조준·권근 등의 세대는 달랐다. 이들은 왜구가 일으키는 전란과 해이해진 사회 기강과 윤리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했는데, 피해자에 대한 포상과 기록을 그 방법으로 취했다. 조준은 우왕대 체복사 활동 등을 하며, 군대의 기강을 바로잡고 지역의 효자·절부 등을 보고해 포상함으로써 기강을 세우고 민심을 위무했다. 조선시대 지방에서 효자·열녀 등의 사례를 중앙에 보고하고 예조에서 해마다 정리하는 체계가 갖추어진 것은 고려 말 이래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어지며 실천되고 제도화된 것이다. 정도전·권근 등은 유배 생활 중에서도 바람직한 행적을 지닌 지역민을 기록했다. 이들이 기록한 사람들은 원래 친분이 있던 이들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인물들이었다. 이처럼 훗날 조선을 건국한 이들은 무명의 사람들을 기록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겨주겠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통해 왜구 때문에 죽임을 당한 많은 이들이 열녀나 효자로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이들은 피해자 중에서도 충·효·열의 가치 기준에 맞는 ‘올바른 피해자’를 선별하여 기록했다. 이를 위해 서사를 윤색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선별과 윤색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이들의 작업을 폄하할 수는 없다. 역사적 경로를 보았듯이, 무명의 민간 피해자를 기록한다는 인식 자체가 14세기 말에서야 자리 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올바른 피해자’는 무너진 기강을 세우고 민심을 위무하려고 한 것 역시 당대의 맥락에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 의식은 조선의 장기 평화의 바탕이 될 수 있었다.
Authors
- Jiyeon Jang (ORCID: https://orcid.org/0000-0003-4763-7458)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s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31309/skht.78.202412.6
- Primary Topic
- Religious Studies and Spiritual Practic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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