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litical Landscape of Moryang-bu from the Maripgan period to the Middle Ancient period of Silla
현재까지 금척리 고분군의 발굴 자료만을 근거로 하면, 금척리 집단은 3세기 말부터 성장하다가 5세기 후반 급부상했으며, 금척리 고총군은 마립간릉의 배총으로 묻혔던 인물들 중 모량부 출신이 그들의 전통적인 묘지로 다시 돌아와 조영한 것이다. 그들이 선조들의 묘지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모량부 출신이라는 계보를 강조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방내리 고분군의 조영은 곽묘에서 실묘로의 변화라는 매장시설의 전환에 따른 묘역의 이동이라는 계기도 있겠지만 금척리 고총군을 조영한 유력집단에서 왕비를 배출하면서 성장한 유력가문이 그들의 지위를 과시하고 현창하기 위해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금척리 고분군을 탈거해 다른 묘지를 조영한 결과이다. 또 이 시기는 신라 6부의 성격이 단위정치체에서 행정구역으로 변화하는 때이고, 이와 함께 수취 단위가 공동체에서 가족이나 가호 단위로 재편되고 있었는데, 석실은 그러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도입되었기 때문에 제도적인 차원에서 실묘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금척리 고분군이 단위공동체인 모량부를 표상하는 묘지라면, 방내리 고분군은 유력가문을 현창하는 묘지이며, 행정구역화된 모량부의 성격이 반영된 묘지로 이해할 수 있다.
Authors
- Daehwan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THE RESEARCH INSTITUTE FOR SILLA CULTURE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37280/jrisc.2024.12.65.87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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