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Historical Site of Su-un Choi Je-woo
최제우는 1824년 10월 28일 경주에서 탄생하여 1860년 4월 5일 동학을 창도하고 1864년 3월 10일 41세로 처형됐다. 그가 창도한 동학은 우리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시천주’는 인간의 본원적 평등을 추구했다. 그의 사상은 동학농민혁명, 3·1독립운동, 6·10독립운동, 신간회 운동, 일본제국주의 멸망 기원 기도 운동으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분단 저지를 위한 3·1재현운동으로 실현되었다. 동학의 생명사상은 현대의 환경 생태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인물의 행적을 정리하는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수운의 사적지 연구는 천도교단과 학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교단 차원에서는 창시자인 수운의 사적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천도교단의 신앙심 확립에 기여하고자 했다. 1920년대 김기전, 이돈화, 박래홍 등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해방 이후 표영삼과 성주현이 수운의 사적지 정리에 기여하였다. 학계에서는 동학 연구단체를 중심으로 동학의 사적을 정리했으며, 채길순의 동학 사적 정리, 대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 사적 조사가 있었다. 특히 동학학회에서는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각 지역의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사적을 정리하고 있다. 수운의 사적지는 그의 생애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정리했다. 1기로 탄생과 구도 시기(1824.10.28.~1860.4.4.), 2기로 창교와 포교 시기(1860.4.5.~1863.12.9.), 3기로 수난과 순도 시기(1863.12.10.~1864.3.10.)로 구분했다. 1기의 사적으로는 탄생지인 ‘가정리’, 첫 종교체험을 한 ‘여시바위골’, 득도 이전 기도처인 ‘내원사’와 ‘적멸굴’이 있으며, 2기 시기 사적으로는 득도지인 ‘용담정’, 경전을 저술한 ‘은적암’, 접주제를 시행한 ‘매곡동’이 대표적이다. 3기 사적으로는 수감되었던 ‘경상감영’과 처형터인 ‘대구장대’, 죽은 후의 신비체험이 있었던 ‘후연점’, 그리고 수운의 묘인 ‘태묘’ 등이 있다. 본 연구를 바탕으로 동학의 인물과 사적에 관한 연구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Authors
- K. Su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Published
- 2024-12-30
- DOI
- https://doi.org/10.46639/kjds.2024.72.2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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