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ducational Doctrine and “Moralism” in the Early Republic of China (1912-1915): Republican Ethics and Confucianism

중화민국이 수립된 후, 새로운 교육종지 제정을 요구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교육종지를 둘러싼 주장은 개인과 국가, 실리적 지식과 공화 도덕, 정치적 공민 등의 요소 가운데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두며, 이런 요소를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이 글은 중화민국 초기의 교육종지 제정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분석하여 사익과 공익을 둘러싼 중화민국 초기 교육종지의 특징을 분석했다. 그리고 유가가 다시 교육종지로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교육종지 논의는 크게 실리주의와 도덕주의로 나뉘었으며, 개인과 국가의 이해 충돌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리주의는 개인의 실리적 이익 추구는 국가의 부강에 도움이 되며, 도덕심 함양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공화 윤리를 강조한 사람들(도덕주의)은 개인의 과도한 이익 추구가 가져올 개인과 사회의 충돌을 우려했다. 도덕주의자는 국민이 사적 이익을 넘어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공화 윤리를 획득해야 공존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공성을 띤 도덕 교육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2년 중화민국 임시교육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상대적 국가주의에 입각하여 도덕교육을 중시하는 교육종지를 결정했다.교육계 밖에서도 사회와 도덕의 혼란을 우려했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중화민국이 들어선 이후 권력과 이익을 좇는 자들이 도덕을 무시하여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의 가르침(공교)을 국교나 국민도덕으로 삼는 것이 그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공자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공화와 민주의 국면을 낳은 것으로 재해석했다. 이들은 정부가 유가 도덕으로 도덕심을 고양하길 바랐다. 유가로 도덕을 회복하려는 생각은 교육계의 공화윤리를 강조하는 도덕주의와 통할 여지가 많았다. 원세개는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우선한 도덕주의를 내세우며 공자의 가르침을 교육 종지에 넣었다.교육계와 공교 국교화의 도덕주의는 하나는 자각한 개인에서 출발한 윤리, 다른 하나는 개인이 사회에 종속된 윤리를 만들려는 점이 달랐다. 그런데 둘 다 사회의 공익을 중시했으며 도덕 교육을 중시했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원세개는 공자의 가르침을 공화 체제와 부합하는 공화 윤리로 만들어 교육에 적용할 수 있었다. 공익 우선 교육종지는 권력자에게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결국 원세개의 제제운동으로 이어졌다. 원세개가 교육종지를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민국 질서 유지를 희망했던 사회 분위기, 그리고 경제 발전과 국방력 강화라는 국가적 수요, 공공성을 중시하는 공민의 양성이란 도덕주의가 결합된 결과였다. 교육계는 공화정체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교육종지를 다시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Journal of Chinese Studies
Published
2024-11-30
DOI
https://doi.org/10.35982/jcs.110.14
Primary Topic
Educational Reforms and Innovation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Controls
|||
ALL TIME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article

The Educational Doctrine and “Moralism” in the Early Republic of China (1912-1915): Republican Ethics and Confucianism

Byung In Lee
Journal of Chinese Studies
Educational Reforms and Innovations
article

The Educational Doctrine and “Moralism” in the Early Republic of China (1912-1915): Republican Ethics and Confucianism

Byung In Lee
article en

Abstract

중화민국이 수립된 후, 새로운 교육종지 제정을 요구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교육종지를 둘러싼 주장은 개인과 국가, 실리적 지식과 공화 도덕, 정치적 공민 등의 요소 가운데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두며, 이런 요소를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이 글은 중화민국 초기의 교육종지 제정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분석하여 사익과 공익을 둘러싼 중화민국 초기 교육종지의 특징을 분석했다. 그리고 유가가 다시 교육종지로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교육종지 논의는 크게 실리주의와 도덕주의로 나뉘었으며, 개인과 국가의 이해 충돌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다. 실리주의는 개인의 실리적 이익 추구는 국가의 부강에 도움이 되며, 도덕심 함양에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공화 윤리를 강조한 사람들(도덕주의)은 개인의 과도한 이익 추구가 가져올 개인과 사회의 충돌을 우려했다. 도덕주의자는 국민이 사적 이익을 넘어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공화 윤리를 획득해야 공존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공성을 띤 도덕 교육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2년 중화민국 임시교육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상대적 국가주의에 입각하여 도덕교육을 중시하는 교육종지를 결정했다.교육계 밖에서도 사회와 도덕의 혼란을 우려했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중화민국이 들어선 이후 권력과 이익을 좇는 자들이 도덕을 무시하여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의 가르침(공교)을 국교나 국민도덕으로 삼는 것이 그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공자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공화와 민주의 국면을 낳은 것으로 재해석했다. 이들은 정부가 유가 도덕으로 도덕심을 고양하길 바랐다. 유가로 도덕을 회복하려는 생각은 교육계의 공화윤리를 강조하는 도덕주의와 통할 여지가 많았다. 원세개는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우선한 도덕주의를 내세우며 공자의 가르침을 교육 종지에 넣었다.교육계와 공교 국교화의 도덕주의는 하나는 자각한 개인에서 출발한 윤리, 다른 하나는 개인이 사회에 종속된 윤리를 만들려는 점이 달랐다. 그런데 둘 다 사회의 공익을 중시했으며 도덕 교육을 중시했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원세개는 공자의 가르침을 공화 체제와 부합하는 공화 윤리로 만들어 교육에 적용할 수 있었다. 공익 우선 교육종지는 권력자에게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결국 원세개의 제제운동으로 이어졌다. 원세개가 교육종지를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민국 질서 유지를 희망했던 사회 분위기, 그리고 경제 발전과 국방력 강화라는 국가적 수요, 공공성을 중시하는 공민의 양성이란 도덕주의가 결합된 결과였다. 교육계는 공화정체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교육종지를 다시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

Journal of Chinese StudiesVol. 110
Reduced inequalities
Openalex Percentile: Top 65%
Educational Reforms and Innovations
AI Navigator

Ask Laika to Summarize, Analyze, and Connect papers live on the map.

Summarize Papers & Methodologies

Extract key findings, datasets, and comparative methods across publications.

Benchmark Rankings & Visual Analytics

Rank top research institutions, authors, funders, topics, and journals by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FWCI) and paper volume with instant charts.

Connect Distant Disciplines

Bridge topological clusters on the map to find hidden collaborative inters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