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Students’ Educational Problems in Busan during the Korean War
한국전쟁 중에는 국가와 각 학교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교육을 해나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51년 2월의 문교부「전시하 교육 특별법 조치 요강」에 따른 피란학생에 대한 교육, 1951년 6월의 1인 1기 교육실시, 같은 해 8월의 교육법개정에 따른 6년제 중학교를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분리, 1952년 6월 교육자치제 실시로 국가에서는 교육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했지만, 실제 전쟁 상황 하에서 제도에 맞는 교육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부산에 거주하던 학생들이나 피란학생들은 군대 주둔을 위해 기존의 학교 건물과 운동장 부지를 내놓아야 했고, 가교사를 짓고, 교과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사들에게도 교육받아야 했다. 치솟는 물가에 의해 등록금을 제때 마련할 수 없거나, 등록금 외에도 기타 부가금이 너무 과다하여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대부분 천막 교사나 나무판자 교사에서 어렵게 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사(校舍)가 무너지면 학생들이 동원되어 수리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의 일기에 따라 교사가 무너지지 않기를 걱정해야 했다. 교육 외 활동으로, 교실 문제로 인한 교육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군 위문이나 군 관련 노동을 해야 했고,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군사훈련과 정부에 호응한 가두시위에 가담해야 했다. 그리고 당시 학교에 다니면서 나타나는 문제로, 수업료를 비롯한 사친회비, 후원회비, 학도호국단비, 선물비 등이 문제가 되었고, 학용품과 교재 부족 그리고 고등교육을 위한 해외 유학이 주로 해외 원조로 인해 해결되었고, 이와는 반대로 음주, 담배, 사교댄스, 극장출입, 다방 출입 여관 출입 등의 풍기문란이 나타났으며, 시설 미비로 인한 위생 문제, 뇌염으로 인한 휴교 문제, 가교실로 인한 건강 문제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군대에 가야 하는 징집 문제와 힘든 시기임에도 입시 문제가 나타났다. 한국전쟁기 부산은 임시수도로서 피란학교를 주도하였지만, 당시 학생들 대부분은 올바른 교육정책을 통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겪으면서게 오히려 3년간의 고난을 처절히 체험했야 했던 것이다.
Authors
- Dowon Choi (ORCID: https://orcid.org/0009-0000-5056-278X)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History of Korean Education
- Published
- 2024-12-30
- DOI
- https://doi.org/10.15704/kjhe.46.4.202412.129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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