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ation of 'the Danyeon Association' and fundraising in 'the Gyeongju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이 논문은 경주국채보상운동을 고찰한 것이다. 경주에서 단연회가 결성된 것은 1907년 3월 18일이다. 4월 19일에 단연회의 명칭을 ‘연성회’라고 정하고 회의 규칙을 새로 정비하였다. 이는 느슨해진 단연회를 정비하여 의연금 모금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1907년 음력 6월에 만든 국채보상의연금 성책 3권이 있다. 성책에는 경주군민 5,062명의 의연금 3,304여원이 10개면으로 나뉘어 적혀 있다. 성책에 실린 금액이 약정액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필자는 모두 거둔 금액으로 판단했다.경주 10개 면 전체 동·리 가운데 과반수 이상의 동·리에서 의연 행위가 있었다. 연성회에서 각 면과 동에 임원을 두고 있으며 의연금 모금을 위해 동의 각 호의 총수를 조사했다. 경주성책에는 동·리와 개인 의연자 이름이 모두 밝혀져 있어 단체 의연한 비중이 높은 지역의 성책과 대비된다.경주국채보상운동에 많은 인원이 동참한 것은 유림과 향교가 중심이 된 연성회가 앞장서고 향약을 기반으로 한 마을 조직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이 국채를 갚아 국권을 회복하려는 구국정신과 결합되었기 때문이었다. 경주 국채보상운동도 국민된 도리로서 애국심을 갖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다한 운동이었다.의연금을 전달하려 서울에 간 연성회 재무 임천식의 아들이 의연금을 분실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매일신보』에는 거둔 의연금의 반액 정도인 1,752원 84전만이 접수되었다. 향회에서 대책을 논의했으며 임천식 부자는 분실한 의연금 보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였다.모금된 의연금의 부당한 사용을 조사하기 위한 ‘국채보상금검사소’에서 1909년 5월 임천식을 법사에 고소할 것임을 밝히는 것으로 봐서 이 시기까지 의연금 분실 건이 해결되지 않았다. 향회에서의 분실금에 대한 논의 결과와 분실 의연금을 보전하려는 노력 등은 추후 연구과제로 남겨 두었다.
Authors
- S. Hun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DAEGU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17751/dhr.157.109
- Primary Topic
- Asian Industrial and Economic Development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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