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Buyeo(夫餘) in the first half of the second century
본고에서는 2세기 전반의 후한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부여의 대외관계와 관련한 제반사료와 주변 국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부여의 대외관계와 외교정책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111년 부여가 공격한 대상은 낙랑군(樂浪郡)이 아닌 제3현도군(玄菟郡)의 변새(邊塞)로 추정하였다. 부여가 변새를 공격한 배경은 부여의 세력권에 대한 고구려(高句麗)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한 것이었고, 부여는 후한(後漢)과 고구려의 교섭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BR/ 다음으로 120년 부여와 후한의 관계가 개선되기까지의 과정과 배경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遣子의 행위는 협상 과정의 시작이 아닌 끝에 있는 절차였으며, 외교적 이해관계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거나 타민족을 신뢰할 수 없는 경우 후한 조정에 의하여 거부되었다고 보았다. 즉, 120년 부여의 ‘왕자를 보내는 행위’는 협상 과정의 시작이 아닌 마무리 절차로 보여지며, 양국의 접촉은 120년 전부터 제3현도군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BR/ 다음으로 121년 고구려의 제3현도군 공격과 부여의 군사적 지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시 제3현도군은 부여와 후한의 교섭 창구였고, 고구려에 점령된다면 부여는 교섭 창구를 상실하게 되어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후한으로서도 제3현도군이 점령될 경우 동북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상실될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여가 후한을 지원함으로써 후한은 고구려와 선비의 연합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제3현도군을 보전함으로써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했다. 이러한 상황은 부여와 후한의 관계 개선을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관계 진전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Authors
- Sang-Rok Mi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4-12-31
- DOI
- https://doi.org/10.37331/jkah.2024.12.116.333
- Primary Topic
- Eurasian Exchange Network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