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yalist Rediscovery of Patriarcha and Political Patriarchalism during 1670-80
최근의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부권론』을 저술한 써 로버트 필머(Sir Robert Filmer)의 부권적 절대왕권론은 더 이상 철 지난 담론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오히려 필머의 글은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1680년대에 잉글랜드 정치 논쟁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왕당파에게 실질적인 이론적 논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16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정치적 사건들은 잉글랜드 왕당파와 의회파가 ‘팸플릿 전쟁’을 벌이게 되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양자는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왕당파는 필머의 저술을 왕권절대성을 지지하는 논리적 근거로 적극 활용했다.왕당파가 주장해 온 절대적 군주권의 핵심은 사회의 구성원인 인민이 아니라 오직 신으로부터 권위를 넘겨받았다는 권력 기원의 신성성(神聖性)이었다. 이러한 군주의 통치권은 아담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가부장적 지배권으로부터 계승된 것이었으므로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왕당파는 필머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절대적 군주상만 주장하지 않았다. 실제로 왕당파 저술가들은 필머의 절대적 군주상에서 ‘보살피는 아버지’라는 유화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휘그 정치사상에 효과적으로 대항하는 절대왕권론을 내세우고자 했다. 결국 왕정보고기 왕당파는 필머의 저술을 적극 수용하되 당시 정치 풍토에서 휘그파의 의회주의적 정치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필머의 언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Authors
- Jeong-kyu Par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angwo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31097/khr.2024.43.06
- Primary Topic
- Historical Gender and Feminism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