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 Joseon Dynasty Gyeonggi monk painter and Dharma Clan
경기지역 또는 한성 인근을 뜻하는 근기(近畿) 화승을 지칭하는 ‘경성양공(京城良工)’은 1788년 상주 <남장사 괘불도> 조성 기록인『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는 『불사성공록』에 함께 기록된 대승양공(大乘良工), 호남양공(湖南良工)처럼 경기지역에서 온 화승 집단을 의미한다. 당시 괘불 조성의 수화승인 상겸(尙謙)과 보조 화승들은 같은 해 2월에 함경남도 복흥사(福興寺) 불사를 마치고 바로 상주로 내려와 4월에 괘불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경기지역 화승(이하 경기 화승)이 수화승을 중심으로 짧은 기간 지역을 넘나들며 불사에 참여한 조직적인 집단이었음을 알려준다.그러나 경기 화승이 이처럼 조직적이고 집단화된 18세기에 비하여 17세기 활동은 미미한 편이다. 현전하는 불화도 <안성 칠장사 오불회괘불도> 1폭을 제외하고는 모두 18세기부터 조성된 것이다. 물론 남아있는 불화와 기록만 가지고 경기 화승의 활동 양상을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불화 조성과 경기 화승 집단 형성이 모두 18세기 후반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17세기 비교적 규모가 작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 화승은, 숙종년간 의승역 시행으로 남·북한산성 의승 소속 화승이 타지역에서 방번하면서 원지역 화승과 공존하며 교류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1756년 의승방번전제 시행으로 윤회 입번하던 의승들이 고입되어 정착하면서, 화승들 또한 경기지역에 장기간 정착하였을 것이다.이를 계기로 다양한 공역에 원거주 화승과 의승 소속 화승이 함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집단을 형성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수화승이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전반 성주 쌍계사의 회암문인 수화승 각총은 팔도도총섭인 계파성능과 경기지역 사찰의 주세력으로 성장한 벽암문중의 관계에 의해 정착하였으며, 그의 화업은 쌍계사에 함께 세거한 소요문중인 출신 화승 설훈에게 전해진다. 설훈은 각총과 함께 활동하며 각총의 집단 작업 방식을 수용하였으며, 나아가 수화승 설훈을 중심으로 한 경기 화승 집단은 타지역 불사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경기 화승은 1788년에 이르러서는 남장사, 복흥사, 마곡사의 불사가 동시에 발생했을 때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수행했을 정도로 조직화 되었다. 설훈의 화업은 안동 광흥사의 함월문인 화승 상겸과 불모산 성주사의 설송문인 연홍에게 이어졌으며, 18세기 후반 경기지역 주세력으로 성장한 환성문도의 조력을 통해 수화승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상겸이 1790년 정조의 주도로 시작된 용주사창건 불사에서 화탱편수승(畵幀遍手僧)으로 30명이 넘는 화승들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며, 연홍은 흥국사에 주석하며, 화성건립 시 양주목 화승을 대표하는 수화승이 된다.또한 연홍의 화맥은 흥국사의 주지인 함월문도 화승 기허탄학에게 전해지며, 사자상승에 의해 화맥은 탄학 - 희원 - 혜호로 이어지고, 법맥은 탄학 - 유성 - 응하를 통해 왕실의 화주와 함께 19세기 말까지 불사를 주도하며 흥국사의 주류 계보가 형성된다. 화승의 계보가 사찰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하게 되면서 흥국사의 화맥은 강한 명맥을 이어가게 되며 결과적으로 근대기 ‘경성화소’로 불리며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Authors
- Hak Cho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Art History Journal
- Published
- 2024-12-15
- DOI
- https://doi.org/10.24828/ahj.63.269.302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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