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Rock-carved Seated Maitreya Buddha of Bongamsa Temple, Mungyeoung
이 논문은 문경 보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에 대한 연구이다.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문경 희양산 백운대에 위치해 있으며, 환적당 의천이 1663년 발원해 조성됐다. 환적의천은 편양언기의 후손으로 서산휴정의 법맥을 잇고 있다.조계종 종립선원인 봉암사는 1년 내내 산문을 닫고 있으며, 음력 4월8일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에게 개방된다.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인지,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에 대한 연구논문은 많지 않다. 이 논문은 불상 조성을 발원한 환적 의천의 행장을 토대로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을 조성한 이유를 시대적, 사상적으로 추정해본다. 또한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의 조각사적 의의와 회화적 표현이 두드러진 이유를 고찰했다.환적은 선과 염불 수행을 한 승려로, 출가 후 전국 사찰을 찾아다니며 정진했고,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불사를 했다. 사찰 4곳에 자신의 법호를 딴 ‘환적암’을 건립했다. 또 불보살상 제작도 주도했는데,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과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이 대표적이다. 그가 입적한 후 그의 제자들은 8개 사찰에 그의 승탑을 건립하고 사리를 봉안했다. 행장에는 문경 봉암사 외에 합천 해인사 홍제암, 춘천 청평사, 제천 덕주사, 태백산각화사, 거창 연수사, 대구 용연사, 인동 대곡사에 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했다고 기록돼있다. 다만 칠곡 대흥사에 환적당 탑이 남아 있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인동 대곡사는 대흥사의 오기가 아닐까 한다.봉암사 마애상은 기년작으로 편년이 명확해 17세기 미륵불과 마애불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용화수 가지를 손에 들고 있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미륵불 도상의 모습을 보여준다.봉암사 마애불상은 괘불을 모본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 논문에서는 봉암사 상(像)보다 앞서 조성된 <나주 죽림사 세존 괘불도>와 <화엄사 영산회괘불도> 등의 괘불 도상과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을 비교함으로써 도상의 공통점을 찾아봤다. 또한 18세기 초반에 조성된 <안동 봉정사 영산회괘불도> 표현과 비교해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상 도상이 이후에 조성된 괘불의 도상 흐름과 이어지는지 비교했다.조선 후기에는 조각승과 불화승이 교류하고, 불상 조각에 화승이 참여하거나, 불화 조성에 조각승이 참여하기도 했다. 17세기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도우(道祐), 천신(天信) 등이 대표적이다. 봉암사 마애상을 제작할 때 조각승 외에 화승이 참여했을 가능성과 함께 마애상 초(草)를 불화승이 그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 있다.환적당이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을 조성하는데 있어 괘불의 도상을 모본으로 삼은 이유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17세기는 불교 재건의 시기다. 전각, 불상, 불화가 폭발적으로 제작되는 반면, 마애상 제작은 극히 드물었다. 때문에 석수(石手) 또한 많지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석수의 양적 질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화사를 참여시켰고, 회화적 묘사와 선각이 두드러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은 절대연대와 존상명을 가진 조선 후기 마애불상이며, 회화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배경에는 조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불화의 표현기법을 빌려온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것 17세기 미륵불과 마애불 연구에 중요하다.
Authors
- Hyun kyung Eo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Art History Journal
- Published
- 2024-12-15
- DOI
- https://doi.org/10.24828/ahj.63.239.268
- Primary Topic
- Ancient Egypt and Archaeolog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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