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st Movement of People from Sangju, North Gyeongsang Province
경북 서북부의 중심지인 상주는 다양한 비밀결사단체의 활동지였다. 의병에서 의열투쟁으로 이어진 상주의 독립운동은 3⋅1운동을 매개로 하여 1920년대 의열투쟁으로 이어졌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상주인의 3⋅1운동은 김진호 등 상동교회 인사를 비롯하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 신민회 활동에 이어 전덕기, 이필주 목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김진호는 3⋅1운동 당 시 학생들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 다. 서울에 유학중이던 상주 출신 학생들은 3월 1일, 5일 만세시위를 확 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상주 출신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6월에 추진된 파리강화회의 동조 활동으로 이어졌다. 서울에서 전개한 상주인의 3⋅1운동은 상호간의 교감 속에서 3월 중순부 터 상주로 전이되었다. 상주의 만세시위는 3월 23일 상주 장터시위, 3월 29 일 이안 소암리 제방시위, 4월 8월 화북 문장산 시위, 4월 9일 화북 운흥리시 위 등으로 이어졌다. 상주 만세시위를 이끈 것은 대체로 20~30대의 젊은 청 년이었다. 지역을 초월하여 일어난 상주인의 3⋅1운동은 상주 독립운동은 물론 3⋅1운동의 초경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Authors
- Hwang Sun-I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History Education Review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31968/hae.2024.11.39.223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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