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of Seokji Chae Yongsin (1850-1941) and His Bird-and-Flower and Animal Paintings
이 논문은 채용신의 무관 경력과 관직 생활을 관찬 사료를 통해 면밀히 검토하고, 채용 신이 제작한 화조·영모화의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기존에는 채용신의 무관 경력을 입증할 만한 관찬 사료가 부족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각사등록』과 『승정원일기』를 통해, 채용신이 ‘채동신’이라는 이름으로 약 9년간 무관으로 활동했음이 확인된다.<br/> 채용신은 1886년 각 지방에서 실시된 무술 시험에 합격해 지방 군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891년에는 현재 전라남도 여수시 고돌산의 소모별장으로 임명되어 약 2년간 활동하였고, 1893년에는 경상남도 창원시 구산의 첨사로 발령받았다. 이후 그는 무관직에서 퇴임하고, 1895년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으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채용신은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으며 어진 모사의 주관화사로 발탁되었고, 그 공로로 1900년 5월 경상북도 칠곡의 군수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중추원 의원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부모의 삼년상을 마친 뒤인 1905년 1월부터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의 군수로 활동 했다. 1906년 12월에는 순종과 순정황후의 가례에 화원으로 참여한 공로로 종2품 가선대 부에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br/> 채용신은 초상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초상화 외에 가장 많이 제작한 작품은 화조· 영모화였다. 1943년 6월 4일부터 10일까지 경성(현재 서울)의 화신백화점에서 개최된 유 작전에 출품된 작품 목록에 따르면, 총 19점 중 화조·영모화가 5점이나 포함될 정도로 그 비중이 컸다. 채용신의 화조·영모화는 20세기 초 지방화단에서 제작된 화조·영모화 중, 관지를 통해 화가와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례로, 당시 지방화단의 화조·영모화 경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br/> 채용신의 화조·영모화는 화조도 계열과 영모도 계열의 병풍으로 구분된다. 그의 화조도 계열 병풍은 구도와 소재 면에서 궁중 장식화와 유사한 점이 많으나, 소재 변용, 연한 채색 기법, 후기에서 바림 기법의 적극적 활용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반면 영모도 계열 병풍은 중앙화단과 궁중 장식화의 소재와 구성을 따르면서도, 소재를 변용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고, 원근감 있는 산수 배경으로 입체감을 표현한 점이 특징적이다. 특히 초상 화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동식물을 사생적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것이 돋보인다.<br/> 이러한 채용신의 화조·영모화는 20세기 초 지방화단에서 궁중 장식화와 중앙화단의 화조·영모화를 수용하면서도 변용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당시 화단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면을 제공한다.
Authors
- Jinhee Ya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Misulsa Yeongu Journal of Art History
- Published
- 2024-12-20
- DOI
- https://doi.org/10.52799/jah.2024.12.47.37
- Primary Topic
- Urban and spatial planning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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