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Japanese and Lee-byoungdo’s perception of Lintunjun
근대에 들어와 일본인에 의한 임둔군 연구는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이나바 이와키치, 이마니시 류, 이케우치 히로시 등의 연구가 있어 왔다. 이들은 임둔군에 대해 함경남도 남쪽부터 강원도 지방에 걸쳐 있다는 견해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임둔군의 주체를 예족로 보아 그 예족을 동예로 간주하여 강원도로 설정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임둔군이 예족의 동예와 어떤 정치적, 종족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무릉서』를 기준으로 할 때에 임둔군 15현을 강원도에 설정하기에는 너무 좁고 인구규모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이병도는 임둔군이 폐지되며 방기된 『무릉서』의 임둔군 8현에 대해 영동7현의 이북인 옥저지금 함흥 이북의 함경남도 지방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대의 인문지리적 상황도 이 지역에는 도시가 많이 형성된 지역이 아니다. 이병도의 논리대로 하면 진번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하여 오히려 진번군이 임둔군보다도 더 요동에 가까이 있게 된다. 결국 이동된 임둔군은 최초의 임둔군 2현과 동예의 토착현 5현이 합쳐져서 영동7현을 구성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임둔군은 한의 좌장군 순체가 위만조선을 정벌하며 임둔을 열자 연과 제가 예맥에서 곤란을 겪었다고 기재된다. 이 같은 『염철론』기사를 인정하면 예맥과 임둔과의 관계를 잘 알게 한다. 위만조선이 멸망하면서 요동의 예맥 곧 임둔은 임둔군이라는 한 사군 체제를 거처 ‘반도’의 동북쪽으로 이전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Authors
- Byoung-mo Yo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18496/kjhr.2024.11.86.251
- Primary Topic
-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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