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rrender of Waegu (Japanese Pirates) and King Taejo’s Jimi Policy (羈縻策) in Early Joseon Period
15세기『조선왕조실록』및 기타 관련 사료들에 의하면, ‘회유(懷柔)’라는 용어는 주로 조선-명의 관계와 같이 공식적인 책봉 관계 또는 군신 관계에 사용되었다. 조선 조정과 왜구 간에 사용하는 데에는 부적합했다. 실제로 대규모 왜구투항이 이루어졌던 태조~정종 시기 『조선왕조실록』에는 아예 ‘회유’라는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회유책’이라는 용어 사용을 위해서는, 왜구 투항 관련 사료에 보이는 조선 조정의 역할이 적어도 ‘회유’의 현대적 의미에라도 부합하는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br/> 태조~정종 시기 사료에 보이는 왜구들의 투항·귀순 사례들에 관해서는, 그 과정을 ① ‘투항 단계’와 ② ‘귀순·도주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① 투항 단계’에서 왜구 투항의 주된 배경은 1380년대 이래 고려·조선 조정의 적극적인 군사 정책 시행에 있었다. 기존 통설에서 지목하는 조선 조정의 ‘회유책’ 모습은 사료상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 왜구 투항 이후 ‘② 귀순·도주단계’에서 조선 조정은 항왜 집단을 분리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식량을 지급함으로써 치안상 위협을 감소시키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 조정은 귀순하지 않고 반항의 기미를 보이는 항왜들에 대해서 토벌 작업을 병행하였다. 이러한 조선 조정의 강경책에 위협을 느낀 항왜들은 몰래 도주하여 근거지인 대마도 등지로 돌아가곤 했다.<br/> 즉 왜구들은 고려·조선 조정의 적극적인 군사 조치에 따라 투항하였고, 조선조정은 이들에 대하여 강·온 양면의 조치를 모두 시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항왜들이 귀순 또는 도주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러한 우대 조치는 이미 투항·귀순한 항왜들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으므로, ‘회유’의 15세기 당시 용례 및 현대적 어의(語義), 그 어느 측면에서도 이를 ‘회유책’이라고 부르기 어렵다.<br/> 왜구 투항·귀순에 관하여 조선 태조가 했던 발언, 즉 ‘가면 붙들 필요 없고, 오면 거절할 필요 없다(去則不必追, 來則不必拒).’는 등의 사료 내용을 검토해 보면, 태조의 왜구·왜인 대응 정책은 원래 고대 중국에서부터 유래한 기미책(羈縻策)에 근거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즉 조선 조정이 이미 투항한 항왜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은 ‘회유책’이 아니라, 기미책으로 규정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Authors
- Jong-Ho So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18496/kjhr.2024.11.86.115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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