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nsformation of Sayeokwon(司譯院)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ts Significance
조선 후기 사역원 공간구성의 변화는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첫째, 원로역관과 문신 관원을 우대하였다. 당상역관(堂上譯官)이라 불리는 훈상당상(訓上堂上)과 상사당상(常仕堂上)의 청사는 공간구성상 위계가 높은 안쪽으로 함께 배치되었다. 또한, 역관이 주인공인 사역원 내에서 단 두 명의 문신을 위한 겸교수청(兼敎授廳)은 전란 이후 중건 당시부터 분리된 청사를 가지고 있었다.<br/> 둘째, 사역원의 핵심인 사학(四學)은 각자의 업무공간이 구분되었다. 양난 이후 급격히 높아진 한학・왜학 역관의 중요도를 반영하여 한학전함청(漢學前銜廳)과 왜학청(倭學廳)이 우선적으로 세워져 기능하였다. 이어서 현종대에는 몽학(蒙學)과 청학(淸學)의 청사가 건립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사학 체제를 복원하는 한편 불안정한 대외상황을 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br/> 셋째, 부경사행 체아직을 위한 업무공간이 모두 분리되었다. 부경사행에는 상통사(上通事)와 교회(敎誨), 총민(聰敏), 차상통사(次上通事), 압물통사(押物通事), 우어별체아(偶語別遞兒) 등의 역관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영조대 후반까지 모두 각 체아직마다 독립된 하나의 청사를 가졌다. 증가하는 업무량에 압물통사의 청사는 둘로 나눠지기도 하였다.<br/> 넷째, 청으로 조공을 가는 부경사행의 현실과 명에 대한 의리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숙종대 후반 대청외교의 중심이 청학청이 사역원 공간 내에서 위계가 높은 대청의 뒤편이자 훈상당상청과 수평적 영역으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사역원 누각의 이름은 ‘열천(冽泉)’으로 바뀌어 난세가 가고 다시 치세가 올 것임을 믿는 대명의리론을 표방하였다. 청을 직접 상대하는 역관들이 반드시 그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도로 지어진 이름이었다.
Authors
- Sergey M. Yun (ORCID: https://orcid.org/0000-0001-6166-1716)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18496/kjhr.2024.11.86.43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