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gration and Settlement and Life & Culture of the ‘Submerged People’ by the Seomjin Dam to the Reclaimed Land, Gyehwa-do(1965-2020)(3) - the New Settlers and Natives, Farming, the Other Stories -

1960년대 후반 섬진강댐과 옥정호에 의한 수몰로 인해 정읍 칠보면과 임실 강진면 일대 주민들의 생활이 문제가 되자 그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로 섬(島嶼)인 계화도에 방조제를 설치하고 간척지를 만들게 되었다.계화도 간척사업은 1963~71년의 기간에 이루어진 대규모의 역사(役事)였다. 물론 그 시작은 이미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해방으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행된 사업이다. 이로써 농업용 청호저수지도 만들어지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염분이 많아 농토로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객토와 배수관 매설작업 등을 거쳐 역사적인 계화도 간척지 농업이 시작되기에 이른다.수몰 이주민들에게는 일정한 토지도 제공되었다. 하지만 생활에 필수적인 주택 등의 공사가 날림으로 이루어져 이주민들은 숱한 어려움을 겪는다. 주민들의 상당수는 임실과 정읍에서 왔지만, 수몰민들에게 분양권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도 태반이었다.또한 정착 과정에서 계화도 원주민과의 미묘한 갈등 가운데, ‘정착촌’을 형성하여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세월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수몰 이주민의 계화도 간척지 영농(營農)과 원주민들의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 가운데, 그 실태에 대해 당시의 신문자료, 현지 증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즉 이미 1, 2차에 걸쳐 살펴본 ‘섬진댐 수몰민과 계화도 이주민’이야기를 뒤로 하고, 기초 자료와 현장 조사 및 면담 등을 중심으로 ‘계화도 이주민의 영농과 원주민, 남아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살피고자 했다. 특히 1960년대에서 근래 새만금간척사업 추진에 이르는 지난 반세기를 넘는 기간, 지역민들의 삶과 일상 및 지역사회의 변동을 견지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관련 기록과 기억이 중심을 이루고, 선행연구에 대한 검토 이후 언론보도와 현장 조사 및 인터뷰 등이 활용되었다.구체적으로는 댐 수몰민 이외 기타 이주민들의 계화도 이주 초기 이주 정착의 경과와 영농 실태에 대해 검토하였다. 또한 주택문제 등 이주민의 고단한 일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나아가 계화도 원주민들의 애환에 대해서도 살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계화도 간척과 1990년대 새만금사업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기 가운데 전북 서해안지역 간척의 역사적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맥락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Journal of Korean Island
Published
2024-10-31
DOI
https://doi.org/10.26840/jki.36.3.1
Primary Topic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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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gration and Settlement and Life & Culture of the ‘Submerged People’ by the Seomjin Dam to the Reclaimed Land, Gyehwa-do(1965-2020)(3) - the New Settlers and Natives, Farming, the Other Stories -

Minyoung Kim
The Journal of Korean Island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article

The Migration and Settlement and Life & Culture of the ‘Submerged People’ by the Seomjin Dam to the Reclaimed Land, Gyehwa-do(1965-2020)(3) - the New Settlers and Natives, Farming, the Other Stories -

Min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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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960년대 후반 섬진강댐과 옥정호에 의한 수몰로 인해 정읍 칠보면과 임실 강진면 일대 주민들의 생활이 문제가 되자 그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로 섬(島嶼)인 계화도에 방조제를 설치하고 간척지를 만들게 되었다.계화도 간척사업은 1963~71년의 기간에 이루어진 대규모의 역사(役事)였다. 물론 그 시작은 이미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해방으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행된 사업이다. 이로써 농업용 청호저수지도 만들어지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염분이 많아 농토로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객토와 배수관 매설작업 등을 거쳐 역사적인 계화도 간척지 농업이 시작되기에 이른다.수몰 이주민들에게는 일정한 토지도 제공되었다. 하지만 생활에 필수적인 주택 등의 공사가 날림으로 이루어져 이주민들은 숱한 어려움을 겪는다. 주민들의 상당수는 임실과 정읍에서 왔지만, 수몰민들에게 분양권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도 태반이었다.또한 정착 과정에서 계화도 원주민과의 미묘한 갈등 가운데, ‘정착촌’을 형성하여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세월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수몰 이주민의 계화도 간척지 영농(營農)과 원주민들의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 가운데, 그 실태에 대해 당시의 신문자료, 현지 증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즉 이미 1, 2차에 걸쳐 살펴본 ‘섬진댐 수몰민과 계화도 이주민’이야기를 뒤로 하고, 기초 자료와 현장 조사 및 면담 등을 중심으로 ‘계화도 이주민의 영농과 원주민, 남아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살피고자 했다. 특히 1960년대에서 근래 새만금간척사업 추진에 이르는 지난 반세기를 넘는 기간, 지역민들의 삶과 일상 및 지역사회의 변동을 견지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관련 기록과 기억이 중심을 이루고, 선행연구에 대한 검토 이후 언론보도와 현장 조사 및 인터뷰 등이 활용되었다.구체적으로는 댐 수몰민 이외 기타 이주민들의 계화도 이주 초기 이주 정착의 경과와 영농 실태에 대해 검토하였다. 또한 주택문제 등 이주민의 고단한 일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나아가 계화도 원주민들의 애환에 대해서도 살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계화도 간척과 1990년대 새만금사업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기 가운데 전북 서해안지역 간척의 역사적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맥락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다.

The Journal of Korean IslandVol.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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