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itimate Son and Natural Child of Kim's Family

신라에서는 국왕도 1명의 正妻만 거느렸고, 後妻를 맞이하려면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하고 前妻와 이혼을 해야 했다.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조상기」에 “(重阿飡 김지성의) 前妻古老里, 後妻阿好里”라고 하는 명문이 보인다. 그것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나오는 표현이며, 6두품 또한 1명의 正妻만 두었다는 의미이다.김지성은 喪妻를 하고 재혼했다. 신라 喪服法에서 妻喪 규정은 亡妻時 남편이 婚禮로 맺어진 그녀와의 관계를 喪禮로 청산하는 절차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남자가 상례를 통해 前妻의 자리를 비워야 後妻를 맞이할 수 있었다.김지성은 嫡長子이기에 아버지로부터 甘山田莊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그의 庶兄들은 喪服法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자는 제사를 지낼 수 없으며, 거기에 딸린 재산의 상속 대상자가 아니었다.한편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조상기」의 명문에 김지성의 庶兄인 及漢은 7등 一吉飡·一憧은 8등 薩飡이다. 감산사 伽藍을 조성한 김지성도 重阿飡으로 6등이고, 그의 父(仁章)는 7등 一吉飡이었다. 분명 官位상 모두 6두품이며 嫡·庶의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신라 國法에서는 정식 혼인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 신분의 남녀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같은 신분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김지성 집안의 嫡·庶형제가 모두 6두품 신분을 가진 것은 庶兄의 母 또한 6두품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고정된 國法과는 별도로 같은 신분 내부에서 차별을 만들어내는 진행형인 私的家法이 존재했다. 남자는 신분이 높을수록 妾을 거느리는 경향이 있다. 자식은 生母 신분을 따랐다. 진골 父와 6두품 母(妾) 사이에서 태어난 적지 않은 서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族降하여 6두품 상위의 통혼권 Group을 형성했다. 그것이 법제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관행적으로 6두품 내부 신분을 상하로 나누었다. 진골의 피를 받은 김지성의 아버지 仁章은 본인 어머니의 신분을 물려받아 6두품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일반 6두품들과 자신을 구별했다.仁章은 통혼권 밖에 있는 無名의 庶兄母와 婚前同居하여 庶子 4남매를 낳았다. 그 후 통혼권 안에 있던 觀肖里와 정식으로 婚禮 하여 김지성 등 嫡子 4남매를 생산했다. 仁章과 婚姻儀式을 한 觀肖里와 그렇지 못했던 先同居女(庶兄母)는 國法상 동일 6두품이지만, 둘 사이에는 차별의 장벽이 존재했다. 6두품 내부에 새로운 통혼권 Group의 형성은 새로운 Caste의 탄생을 의미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CHIYEOK KWA YEOKSA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Published
2024-10-31
DOI
https://doi.org/10.19120/cy.2024.10.55.163
Primary Topic
Demographic Trends and Gender Preferenc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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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itimate Son and Natural Child of Kim's Family

Young-kyo Seo
CHIYEOK KWA YEOKSA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
Demographic Trends and Gender P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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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itimate Son and Natural Child of Kim's Family

Young-kyo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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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신라에서는 국왕도 1명의 正妻만 거느렸고, 後妻를 맞이하려면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하고 前妻와 이혼을 해야 했다.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조상기」에 “(重阿飡 김지성의) 前妻古老里, 後妻阿好里”라고 하는 명문이 보인다. 그것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나오는 표현이며, 6두품 또한 1명의 正妻만 두었다는 의미이다.김지성은 喪妻를 하고 재혼했다. 신라 喪服法에서 妻喪 규정은 亡妻時 남편이 婚禮로 맺어진 그녀와의 관계를 喪禮로 청산하는 절차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남자가 상례를 통해 前妻의 자리를 비워야 後妻를 맞이할 수 있었다.김지성은 嫡長子이기에 아버지로부터 甘山田莊을 상속받았다. 하지만 그의 庶兄들은 喪服法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자는 제사를 지낼 수 없으며, 거기에 딸린 재산의 상속 대상자가 아니었다.한편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조상기」의 명문에 김지성의 庶兄인 及漢은 7등 一吉飡·一憧은 8등 薩飡이다. 감산사 伽藍을 조성한 김지성도 重阿飡으로 6등이고, 그의 父(仁章)는 7등 一吉飡이었다. 분명 官位상 모두 6두품이며 嫡·庶의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신라 國法에서는 정식 혼인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 신분의 남녀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같은 신분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김지성 집안의 嫡·庶형제가 모두 6두품 신분을 가진 것은 庶兄의 母 또한 6두품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고정된 國法과는 별도로 같은 신분 내부에서 차별을 만들어내는 진행형인 私的家法이 존재했다. 남자는 신분이 높을수록 妾을 거느리는 경향이 있다. 자식은 生母 신분을 따랐다. 진골 父와 6두품 母(妾) 사이에서 태어난 적지 않은 서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族降하여 6두품 상위의 통혼권 Group을 형성했다. 그것이 법제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관행적으로 6두품 내부 신분을 상하로 나누었다. 진골의 피를 받은 김지성의 아버지 仁章은 본인 어머니의 신분을 물려받아 6두품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일반 6두품들과 자신을 구별했다.仁章은 통혼권 밖에 있는 無名의 庶兄母와 婚前同居하여 庶子 4남매를 낳았다. 그 후 통혼권 안에 있던 觀肖里와 정식으로 婚禮 하여 김지성 등 嫡子 4남매를 생산했다. 仁章과 婚姻儀式을 한 觀肖里와 그렇지 못했던 先同居女(庶兄母)는 國法상 동일 6두품이지만, 둘 사이에는 차별의 장벽이 존재했다. 6두품 내부에 새로운 통혼권 Group의 형성은 새로운 Caste의 탄생을 의미했다.

CHIYEOK KWA YEOKSA The Journal of Korean HistoryVol. 55
Gender e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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